새 집엔 새 살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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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월은 빠르기도 합니다. 눈 껌뻑하면 하루가 지나고 또 눈 한 번 껌뻑하면 한 달이 갑니다. 이곳 대한민국에 처음 와서 우리 가족과 함께 서울에 보금자리를 잡고 살아 온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세월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정말 좋은 일만 가득했던 정든 집을 두고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서운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삿짐을 꾸려가지고 정들었던 서울을 떠나 이곳 평택으로 이사 온지도 벌써 한 달이 됐습니다. 요즘 저는 아주 살맛이 납니다. 아침 일찍 넓은 공원과 학교 운동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도 하고 유치원에 갔던 손녀도 저녁이면 꼭 할미 집에 들렀다가 제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로 보기 드물었던 아들도 저녁마다 집으로 퇴근합니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모이던 우리 가족은 매일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여 저녁식사를 하다 보니 함박웃음이 가득해 그야말로 사람 사는 것 같답니다. 새 집에서 이삿짐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또 새 옷장과 장롱을 구입하고 밥그릇과 접시를 비롯한 가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새 것으로 장만해가며 새 집을 꾸려가는 저는 요즘 너무도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어제도 딸과 함께 주문한 붙박이장을 조립해주고 있는 분들에게 시원한 수박과 따끈한 커피를 대접하면서 괜스레 들떠 있는 제 모습을 본 7살짜리 손녀가 왜 자꾸 웃느냐고 물어 '이 할미는 괜히 기쁘고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큰 사위의 후배로 저와 같은 성씨를 가진 가구점 사장님은 어렵게 이곳에 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을 보면서 항상 생각되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사장님의 말을 들으며 저는 얼마 전에 이사하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주택을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한국토지주택공사 사무실에서 계약을 마친 저는 급하게 이사 날짜를 정했습니다. 한 달 중에 아무 날이나 편한 날로 정할 수 있었지만 저는 제일 좋은 이사 날짜를 잡다 보니 계약 날로부터 3일 후에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두렵기도 하고 긴장이 되어 때로는 들뜬 마음으로 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포장이사를 사전에 예약하고는 그래도 혼자 짐을 하나하나 정리해 꽁꽁 이 보따리, 저 보따리를 만들어 싸놓은 뒤 새로 이사 갈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에 대해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이사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포장이사를 하러온 사람들은 제가 북한 방식대로 이미 모든 물건을 싸놓은 걸 보고는 혹 포장 이사가 아닌가 하고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제 나이 살 만큼 살아 왔었지만 포장 이사 방법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습니다. 포장 이사란 작은 짐 하나까지 포함해 모든 이삿짐을 망가지지 않게 알아서 포장해서 이사해주는 방법입니다.

이사를 가는 당사자는 그저 귀중품만 잘 챙기면 됩니다. 일꾼들은 전자 제품 하나, 자그마한 그릇 한 개라도 다칠세라 조심히 그리고 재빠른 동작으로 포장해 차에 차근차근 올려놓았습니다. 새 집에 도착해서도 역시 김치 냉장고와 냉장고를 정리해주고 세탁기까지 설치 해주고 전기밥솥도 제자리에 놓았는지 꼼꼼히 살펴봐 주는 등 사소한 물건 하나도 제 위치에 정리해주었습니다.

이삿짐뿐만 아니라 저는 청소 업체 일꾼들도 불렀습니다. 청소 일꾼들은 한 점의 티와 먼지까지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는 소독까지 해주었습니다. 모든 정리를 마친 뒤 붙박이장을 설치하며 이런 저런 생각에 혼자 골똘히 잠겨 있는 저에게 옷장을 조립해주던 사장님은 저에게 이곳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됐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만 10년이 됐다는 답변에 사장님은 너무도 잘 왔다고 하면서 큰 딸 결혼식장에서 봤던 것이 벌써 그렇게 됐냐며 제가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찬 인생'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저를 보았다고 덧붙이면서 동료에게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하신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분이라고 저를 소개했습니다.

완성되어가는 옷장과 장롱을 보는 제 마음은 너무도 뿌듯했습니다. 저는 장롱과 옷장을 손 전화기로 사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새로 이사한 것을 축하한다는 문자도 받았습니다. 저는 요즘 새집 꾸리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에서 한 번 이사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이삿짐 옮길 차도 자체로 구입해야 하고 모든 포장과 정리는 혼자 해야만 하다 보니 저는 한 번 이사를 하고 열흘간 자리에 누워 몸살을 앓은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옆집에서 이사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도 좋고 새 물건들인 냉장고와 장롱들을 비롯해 쓸 만한 물건들을 그냥 버리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이사를 하면서야 그 의문을 풀었습니다. 새 집에 가면 새것을 이용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버리면 다시 구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새 집에 가면 하나에서 열까지 다 새것으로 장만 하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국민들의 생활이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하기에 저는 돈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만 요즘은 돈을 쓰는 재미도 아주 쏠쏠합니다. 오늘도 텔레비전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방송인 홈쇼핑에서 주문한 화장대가 도착해 정리하느라 바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