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은 지방 선거의 날이었습니다. 지방 선거라는 것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대한민국 전국에 있는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 단체장을 뽑는 선거를 말합니다.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지방자치 단체의 교육감과 교육위원회 위원들도 국민의 손으로 선출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며칠 동안 서울 시내 곳곳의 거리와 마을 마다에는 선거 유세차들이 다니며 경쾌한 음악소리에 맞추어 이름과 번호를 부르면서 어느 당 누구누구 몇 번을 찍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분주하게 이어졌습니다.
아줌마들의 쨍쨍한 목소리에 선거를 앞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조금은 시끄럽기도 했습니다. 출근길에 버스나 전철역, 심지어는 마을 어귀마다 파란 띠와 노란 띠, 그리고 분홍색 띠를 두른 아줌마들이 인사를 하면서 마치 목청이라도 자랑하듯이 또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큰소리로 노래도 불렀고 명함도 주면서 분주히 소리를 외쳤습니다.
후보자들은 시장을 비롯한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연설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말도 해주곤 했습니다. 저는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에 앞길을 막으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과 아파트 마을 주변에 와서 큰소리로 유세를 하는 사람들에게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자신이 찍게 될 후보자들을 미리 알 수 있고, 누가 국민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일을 더 많이 할 만한 사람인가를 따져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시끄러운 유세가 필요하긴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곳 남한에 와서 벌써 여러 번 선거에 참여했지만, 내 고향 북한과는 전혀 다른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북한에서의 선거 방식은 정치적 안목과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는 명목 아래 주민들을 사상적으로 무장시키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신이 찍는 사람에 대한 약력은 고사하고,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무조건 찬성한다고 투표를 해야 합니다.
북한에서도 선거철에는 담당 주재원들과 보위지도원들이 매우 바쁘게 돌아갑니다. 인민반 주민들은 하루 24시간 인민반 경비를 서야 하고, 후보자들의 사진이 붙은 게시판을 지켜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가창대를 이루어 꽃다발을 흔들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내를 돌아야 하고, 예술선전대들은 각 구역 군, 시마다 다니면서 선전선동 사업을 활발히 하기도 합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들에서는 보다 높은 정치적 열의로 100% 찬성 투표하자는 선전사업을 합니다. 저도 학창시절에 모두가 잠자는 꼭두새벽부터 빨갛게 언 손에 꽃다발을 들고 가창대에 합류해서 시내를 돌곤 했습니다. 한 번은 대열에서 졸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비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했고, 감기나 몸살이 나 아파도 결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아프다고 하거나 결석을 하면 정치적으로 분석총화했습니다.
하지만, 이곳 남한의 선거는 북한과 전혀 다릅니다. 남한에서는 선거도 자유롭게 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선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찍고 싶은 당과 후보자에게 눈치 안보고 표를 줍니다. 또, 선거와 관련된 발언도 서슴없이 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친구들과 함께 시장으로 가는 중에 선거유세를 하는 아줌마들을 보고, 조금 시끄럽다고 수다를 떨면서 북한 같으면 우리들이 감히 저 사람들을 보고 시비를 거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당의 어느 후보자가 그래도 시민들을 위해 일을 많이 했다는 둥, 어느 당의 누구는 말 뿐이라는 둥, 후보로 나선 사람들을 나름대로 평가했지만, 누구 하나 우리를 잡아가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선거가 시작되면 불과 몇시간 만에 투표가 끝납니다. 투표를 늦게 하러 가면 정치행사에 늦었다며 충성심이 없다고 비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선거가 시작되는 아침부터 마감되는 오후 시간까지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가서 투표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남한에 와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투표를 했습니다. 내 나이 절반의 인생을 북한에서 살다 보니 아직도 북에서의 습관이 사라지지 않은 듯 합니다. 지난 해에도 1등으로 선거에 참여했는데, 오늘도 선거가 시작되자 마자 제일 먼저 투표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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