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하루

0:00 / 0:00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땡볕이 뜨거운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다지 더운 줄은 몰랐습니다. 남북한 친구들과 함께 쥐눈이콩과 서리태콩을 심었거든요. 비록 몇 평 안 되는 텃밭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 더운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여느 때 없이 아침 일찍 텃밭에 도착한 저는 미리 준비한 음식을 만드느라 청소하느라 분주한데 마침 오전 11시가 되어 기다리던 친구들이 서울을 출발해 텃밭에 도착했습니다. 개성이 고향인 영희와 옥이. 두 친구는 직접 아침 일찍 만든 찹쌀떡에 송편 그리고 닭똥집볶음과 막창볶음과 김치 한 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남한 사람들은 요양원을 운영하는 원장님 두 내외분과 또 한 분은 소방물품을 관리하는 가게 사장님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음식상을 차리고 한쪽에서는 쥐눈이콩과 서리태콩 모종을 심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되다 보니 두 사람은 씨앗을 넣을 구멍을 뚫고 두 사람은 열심히 종자 콩을 넣었습니다. 40분 정도 시간이 되자 벌서 다 심었다고 하네요. 북한에서 농사를 조금 지어본 경험이 있는 영희는 배도 솎아 주고 매실도 솎아 주느라 분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옥이와 저는 음식상을 다 차려 놓았습니다. 여자분들은 와인을 마셨고 남자 분들은 나름대로 직접 제가 담근 복분자 술을 마셨습니다. 오리찜을 드시던 이곳 남한 분들은 색다른 음식이라고 별맛이라고 합니다. 좋은 공기와 좋은 자연 환경과 더불어 좋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소중했습니다.

음식 앞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고향 자랑이 시작 되었습니다. 소방업체를 관리하는 염 사장님은 아버님 고향이 황해도 해주라고 합니다. 엄격하고 생활력이 강한 아버님 슬하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한동안 멀리 보이는 임진각을 바라보더니 지금은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계시는 아버님이 90이 넘었지만 언제 시간이 되면 이곳 고향이 가까운 파주로 한 번 모시고 오시겠다고 하네요.

남편은 개성 송편을 별맛이라고 무려 5개나 드시네요. 그 모습을 보던 영희는 비록 떡은 본인 자신이 만들었지만도 속에 들어간 콩은 형부가 직접 심어 가꾼 콩이라고 하면서 원조는 이곳이라고 우스갯소리와 더불어 고향에서 어머님이 자주 손으로 만들어 주던 송편이라고 합니다.

찹쌀떡 역시 어머님이 찹쌀을 깨끗이 씻어 물을 찌우고 방앗간에서 가루 내어 자주 해 주던 떡이라 하면서 부모덕이 없으니 남편 덕이 없고 자식 복이 없는 여자라 눈에 눈물이 글썽합니다. 영희가 어렸을 때부터 떡을 좋아 한다고 자주해 주시던 어머님이 결혼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하네요,

이렇게 고향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 사이 원장 내외는 들판을 다니면서 자연산 비듬나물과 고들빼기나물을 뜯었습니다. 저는 더불어 부추를 뜯어 드렸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물을 뜯기도 하고 또는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원한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잠을 자는 분도 있었습니다.

영희와 저는 손에 호미를 들고 텃밭주변에 있는 풀을 뽑아 주었습니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났습니다. 시원한 지하수 물에 씻었습니다. 저에게 소중한 분들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저녁 식사는 반구정으로 모셨습니다. 마침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임진강 물은 출렁이었습니다.

음식점 밑에는 철조망이 늘어져 있고 그 안으로 무장한 군인 여러 명이 순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그분들은 마냥 신나 군생활 얘기를 시작합니다. 아버님 고향이 이북인 탓에 뭔가 해명이 부족해 군 생활 6개월을 더 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6개월이 얼마나 지루했던지 군에 또 가야 한다는 꿈을 자주 꾸었다고 하네요.

남편은 비록 해병대 출신이지만 남들 보다 키가 작은 탓으로 해군도 공군도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딱지를 받았다는 얘기로 우리는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콩 심기를 남과 북 친구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