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폭포와 용연폭포

한탄강 유역의 재인폭포.
한탄강 유역의 재인폭포. (Photo courtesy of 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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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 있는 재인폭포를 다녀왔습니다. 서울시의 중심인 광화문에서 재인폭포까지는 불과 2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우리가 탄 버스는 자유로를 달렸습니다. 임진강 맞은편에는 북한이 바라보이기도 합니다.

빤히 보이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가 없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한탄을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저 역시 바라보이는 고향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고향에 대해 수다를 떨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어느새 목적지인 재인 폭포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저는 해설 안내문부터 읽었습니다.

한탄강 가마골 입구에 18.5m 높이의 재인폭포는 다른 폭포와는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아 큰 협곡이 생기면서 폭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폭포 위에는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도 있습니다. 재인 폭포는 줄타기 재인이 폭포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유래에서 비롯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고을 원님의 탐욕으로 인한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강한 정절이 얽힌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문헌에는 전설과는 상반된 기록이 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 어느 원님이 이 마을에 사는 재인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이 폭포 절벽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 줄을 타게 한 뒤 줄을 끊어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으나 절개가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짓으로 수청을 들며 원님의 코를 물어 뜯고 자결하였고 그 뒤부터 이 마을을 재인의 아내가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고 불리게 되었으나 차츰 그 말이 변하여 고문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반면 옛날에 한 재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 사람과 이 폭포 아래에서 즐겁게 놀게 되었으나 자기 재주를 과신한 나머지 재인은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약속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재인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재인의 아내를 내기에 걸게 되었다고 합니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이에 다급해진 마을 사람은 재인이 줄을 반쯤 지났을 때 줄을 끊었고 재인은 수십 길 아래 구렁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로 이 폭포를 재인 폭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어 상반되는 전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재인 폭포는 보개산과 한탄강이 어우러지는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맑은 물로 인하여 사시장철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연천군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도 웅장한 한탄강 댐을 건설 중이었고 재인폭포 주변 공원도 보다 아름답게 꾸미느라 공사 중이었습니다. 주변에는 높은 산맥들로 삼면이 막혀 있는데 산세가 수려합니다. 발아래를 볼 수 있는 유리 길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조금 현기증도 생겼습니다만 내 자신이 너무 멋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재인 폭포로 가려면 100m 깊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철 계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좋아라 잘도 내려가는데 저는 현기증으로 인해 처음에는 포기하려 했습니다. 먼저 내려간 친구들이 폭포를 기념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존심이 조금 상했습니다.

까마득한 아래를 보지 않고 계단만 보면서 한발 두발 내려갔습니다. 뭐든지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듯 사실 내려가서 보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손발도 적셔 보고 많은 사진도 찍었습니다. 폭포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 했었다면 후회할 뻔 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인지 흘러 떨어지는 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시원합니다. 이마에서 흐르던 땀이 어느덧 식고 마음이 상쾌합니다. 좋은 공기를 많이 마시기 위해 저는 깊은 숨을 들이 쉬기도 하고 내 쉬기도 했습니다.

다시 내려갔던 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려 갈 때에는 긴장이 되어서인지 그리 힘든 줄을 몰랐었는데. 한계단한계단 올라오기란 정말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다리가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저는 북한에서도 유명하고 이름 있는 묘향산 용연폭포와 쌍용폭포도 가 보았지만 이곳 재인폭포는 비록 흐르는 물은 그 곳보다 많지 않았지만 산세와 경치는 재인 폭포가 더욱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산이 집이라 몇몇 친구들과 함께 문산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일산역에 도착해 친구들과 함께 유명한 부대찌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얼큰하고 시원한 부대찌개에 소주 한잔 곁들였습니다.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몇 십 년을 살아 왔지만 폭포구경은 단 한 번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디에 어떤 폭포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 왔다고 모두 한입으로 얘기합니다.

그 친구들에 비교하면 저는 그래도 묘향산 견학도 다녀왔었고 묘향산에 있는 용연폭포와 쌍용폭포 등 폭포를 3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사람이 생각과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때에는 그저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견학이라는 의무감에 압박을 받아서인지 묘향산 산세의 수려함과 폭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재인폭포는 그리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좋은 친구들과 또 의미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라는 더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에 이날 하루는 정말 멋진 하루였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