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한 특별 활동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비한살이 체험학습' 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비한살이 체험학습'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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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비행기와 거북선 그리고 활, 군함을 만들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직접 조립한 비행기를 날리고 제일 높이 먼 거리를 날리면 상품도 주었습니다. 또 직접 조립해서 만든 활과 화살을 쏘기도 하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꼬마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 내내 나 자신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마음으로 설레기도 했고, 마치 어린소녀 같은 생각과 행동도 했습니다. 누가 먼저 그리고 누가 잘 접는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승강내기를 하는 그들을 도와주기도 했고 솥뚜껑 같은 이미 굳어진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속에는 한수라는 어린 꼬마 소년이 있었습니다.

비록 초등학교 3학년이었지만 다른 애들보다 키도 컸고 체격 또한 남달리 뚱뚱했습니다. 비록 부모님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기가 죽지 않는 성격이 좋은 아이였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활과 화살을 만들고 나서는 제게 다가와 제가 조립한 활에 자기 이름을 석자를 또박또박 적어 넣었습니다. 조금 당황한 저는 왜 네 이름을 쓰냐고 물었지만 그는 씨물씨물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어느덧 활을 만드는 시간이 끝나고 1층으로 내려가 직접 만든 화살을 쏴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한수는 화살 쏘는 방법 또한 남달랐습니다. 목표 명중도 잘했고 동작 또한 멋졌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그대로 사진에 담기도 했고 함께 동작도 취해 주었습니다.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이며 희망인 꼬마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했습니다. 활 쏘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수는 슬그머니 나에게 달려오더니 내손에 쥐고 있는 활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수가 엉뚱하기도 했지만 기특한 생각이 들어 제가 만든 활과 거북선을 선물로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과장님이 보시고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과장님은 학부형들로부터 의견이 제기될 수 있으니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조립한 비행기를 날리는 시간이 됐습니다. 자기 이름을 적어 넣은 직접 만든 비행기를 한 줄로 서서 날렸습니다. 그중 제일 어린 학생의 젊은 부모님은 처음부터 마지막 끝나는 시간까지 동영상을 찍기도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작은 손으로 저마다 높이 날렸습니다. 저는 맨 앞에 떨어진 순번대로 비행기를 들고 이름을 부르면서 1등부터 10등까지 등수를 정해 선물을 주었습니다.

선물을 보는 순간 아이들의 눈은 커지고 승부 정신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비행기를 날리고 30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만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순간 손자들이 생각나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은 잠깐만 하더니 그들에게 갖가지 새들의 모양으로 된 볼펜을 하나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눈물이 글썽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금세 함박꽃이 피고 좋아라 손뼉을 쳤습니다. 저 역시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학부형들의 얼굴에도 금세 화기가 돌았습니다. 어느덧 그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됐습니다. 항상 만날 때에는 반갑기 그지없지만 그새 정이 들어 헤어지는 시간이 되면 서운합니다.

부모님들과 손을 잡고 직접 만든 활과 군함 그리고 비행기를 들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이 뒷모습을 바라보니 저는 매일 그러하듯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던 지난 시절, 너무도 열악한 사정 때문에 해 주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한창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소망과 꿈조차 키워 주지 못했던 가슴 아픈 추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보조 강사들도 한결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금쪽같은 손자들을 위해 직접 내 손으로 만든 비행기와 활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요즘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행복을 또 하나 찾은 듯합니다. 매일매일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만이 가득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