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부부동반 동해 바다 여행

0:00 / 0:00

갑자기 더워진 찜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저는 조금 이르지만 영순씨 부부, 용녀씨 부부와 함께 강원도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승용차가 없는 용녀씨 부부는 영순씨 차에 함께 탔습니다. 떠나기에 앞서 우리는 인터넷으로 강원도 고속터미널 주소를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저녁 6시쯤 인터넷으로 지도를 보여주며 길 안내를 해줘 자동차 운전을 돕는 장치,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강원도 속초시 조양동 1418번지를 찾아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우리는 가평 휴게소에 들려 간단한 먹을거리도 사 먹었고 조용한 야간 휴게소의 전경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안보 강연으로 속초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 도로를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승용차를 운전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친구와 교대로 운전을 해가면서 새벽 1시가 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동해 바닷가의 밤바람은 쌀쌀했습니다. 조금 추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준비해 간 음식들을 펼쳐 놓았습니다.

저는 찹쌀과 황기, 대추, 은행을 넣은 옻오리 곰을 해갔고 영순이는 북한식 오징어순대와 치킨을 사왔으며, 용녀는 북한식 마른 명태와 잡채를 해왔습니다. 우리는 막걸리 한잔씩 마시면서 추운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며 고향을 그리기도 했고 수평선 너머 불을 반짝거리며 고기를 잡는 어선들을 보며 배를 타고 고향에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우리한테 다가와 콘도를 싸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콘도는 호텔과 별장의 장점을 살린 가족 단위 숙박과 취사가 가능한 종합 휴양 시설을 말합니다. 제가 얼마나 싸게 주겠냐고 물으니 하루 밤 휴식하는데 3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쾌히 콘도에 들어갔습니다. 한 25평 정도 되는 큰 방이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았지만,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동해 바닷가에 간 우리는 밤새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해 함경도 사투리로 '아바이' 마을이라고 하는 청호동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정말 '아바이' 동상도 세워 놓고 '아바이' 마을이라고 큼직한 글씨로 써 놓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점심 식사로 '아바이' 순대를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해수욕장으로 나갔습니다. 작년에는 해수욕장이라고 했는데 올해는 속초 해변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해수욕장이라는 말이 여름 한 철에만 사용하는 표현으로 여겨져 해변으로 바뀌었다는 친구 영순이의 말을 들으니 그 말도 그럴듯하다고 우리는 한마디씩 했습니다.

해변에서 가까운 섬 근처로 지나가는 어선은 한 장의 그림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휴가철은 아니었지만 젊은 청춘 남녀들이 보트를 타는 모습, 여러 명이 한 사람을 들어 바닷물에 던져 놓고는 좋아라 깔깔 웃어대는 젊은이들의 모습 역시 한 장의 사진 같았습니다. 구경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어느 새 영순이와 그 남편은 차에 가서 낚싯대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선착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두 명이 이미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끼를 쓰지 않는 강도 낚시로 잠깐 사이에 커다란 숭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저와 용녀는 파도에 밀려 온 물미역을 건져 똑같이 세 몫으로 나누어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저녁은 조개구이를 먹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저녁 7시가 되어 다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분명 내비게이션에 서울 집주소를 입력하고 떠났는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은 양양을 지나더니 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차는 점점 깊은 산골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귀신한테 홀리지 않았나 하여 다시 확인해 보고 또 보았지만 주소는 정확했습니다.

도로 표지판을 보니 한계령이었습니다. 한계령은 강원도 양양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있는 아주 큰 고개입니다. 해발 1004m인 한계령은 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로서 옛날에는 동해안지역과 내륙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는데 1971년 12월에 양양과 인제를 연결하는 넓은 포장도로가 고개 위로 건설돼 내설악과 외설악의 천연 관광자원 개발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뒤로 구불구불 가파르면서도 으리으리한 능선을 보니 심하던 차멀미도 없어졌습니다. 어느덧 해발 1004m의 고개 정상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초저녁이었지만 설악산의 장엄한 절경이 어둔 밤의 싸늘한 바람과 함께 가슴깊이 확 안겨 왔습니다. 휴게소 건물 역시 자연과 잘 어울려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험한 고개를 승용차를 타고 올라 왔는가하는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휴게소를 지나 인제로 내려오는 내리막길은 더더욱 아찔했습니다. 그야말로 발이 오그라들고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은 정말 험하고 아찔했지만 아름답고 웅장한 한계령 고갯길의 모습에 짜릿함이 느껴졌습니다.

밤 11시가 되어 집에 도착해 우리는 영순씨의 집에 모여 낚시해온 숭어로 탕을 끓이고 건져온 물미역을 끓는 물에 삶아 초장에 찍어 소주 한잔으로 피곤을 풀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