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없는 가뭄으로 인해 강수량이 대폭 줄어들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 놓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강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자주 내보내고 있지만 사실 제가 보기에는 이곳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곡식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안보강연회의 강사활동으로 많은 지역을 다니거든요.
강원도 양구를 다녀오면서 인제 저수지의 밑바닥이 드러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뉴스에서 보던 그대로네' 하는 생각과 함께 가뭄의 심각성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저수지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밭에서는 물 걱정 없이 옥수수와 논벼들이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벌써 제 팔뚝만한 옥수숫대에 꾀꼬리가 나와 마치 벌판에 아기를 업고 서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하고 논에는 건강한 벼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제가 심은 두부콩과 서리태 콩 그리고 오이, 가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어제도 밭을 다녀왔지만 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는 농작물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뿌듯하고 즐거웠습니다.
오이와 가지 그리고 고추는 여러 번 수확해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을 뿐만 아니라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 역시 여러 번 수확해 주스를 친구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게 이런 기쁨과 뿌듯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봅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즐거움과 나의 건강을 위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여름의 뜨거운 햇볕에 쓰러져 가면서도 농사일을 해야 합니다.
그나마도 시골에서 개인 소토지로 일군 땅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채소도 심어 먹을 수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간장, 된장, 소금, 채소까지도 공급을 해 줘야 먹을 수 있습니다.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는 콩잎을 보면서 순간 지나온 내 고향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북한에도 올해 지독한 가뭄이라고 합니다. 논밭이 갈라 터지고 강냉이가 자라지도 못한 채 잎이 말라 죽고 주민들은 당국의 강제에 못 이겨 강냉이 밭에 개울물을 길어다 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동원되어 밭 주변에 우물을 파고 작은 개울에 웅덩이를 파고 고인 물이 논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모습은 너무도 많이 보아온 북한의 현실입니다.
지난날 제가 군복무 시절에도 물을 찾아 수많은 우물을 팠으며 작은 개울을 막아 고인 물이 졸졸 논으로 들어가게 했거든요. 이렇듯 북한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들의 물 고통과 농사방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많이 변하고 있는데 왜 북한 당국은 변하지 않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북한당국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3가지가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위해 주민들은 마치 노예마냥 살고 있다는 것이고 소위주체 농법이라고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농사법으로 주민들은 굶주림과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오로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면서 전쟁 준비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곳 대한민국 주민들은 아무리 큰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땅을 가지고 있든 큰 땅을 가지고 있든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깊은 땅속에 졸장을 박아 땅속에 있는 물을 끌어내어 논밭마다 물이 철철 흐르게 합니다.
제가 농사를 하는 밭 역시도 졸짱을 박아 지하수가 흘러넘치거든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내 고향에서는 전기 사정으로 인해 높은 아파트에서 수돗물이 1층에서 5층까지 겨우 졸졸 나왔습니다. 그나마도 시간제 물이라 물 나온 시간이면 위층에서 사는 주민들과 아래층에서 사는 주민들은 물 때문이 매일 매일 물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인민반장인 저는 아침저녁으로 주민들에게 물은 생명수이자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항상 한 방울이라도 똑같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그야말로 물 전쟁터의 감독을 서야 했습니다. 가뭄이 아닌 평상시에도 물이 모자라 빨래도 제대로 깨끗이 할 수 없었고 물이 부족해 목욕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오염된 물로 인해 전염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북한에서 한평생을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쓰고 땔 걱정 없이 이밥에 고깃국에 기와집에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북한의 공산주의라는 선전과 교육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 같은 거짓 교육과 선전선동으로 세뇌를 받아 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북한당국이 말하던 그 세상이 바로 이곳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 봅니다.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제일 좋은 물을 골라 가며 마시고 사는 우리가 바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국민들입니다. 하기에 우리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나의 진정한 조국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말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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