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였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친구 윤희네 집에 갔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윤희가 뭔가 열심히 손바느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창문 커튼을 그러안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북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빈정대며 놀려대는 저에게 윤희는 잠깐 바느질을 멈추고는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며 오랜만에 손바느질을 하자니 잘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 가면 예쁘고 좋은 커튼을 얼마든지 구입 할 수 있는데 궁상스레 눈도 잘 보이지 않을 텐데 무슨 바느질이냐고 저는 되물으며 들여다보니 정말 보통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팔은 웬만한 남자들 못지않게 굵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윤희건만 이런 솜씨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할 정도였습니다.
윤희는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서 배운 솜씨라고 했습니다. 17살에 시집간 친정어머니는 많은 시동생들과 시부모님의 옷을 다 손바느질로 지어 입혔다면서 친정어머니가 이곳 대한민국에서 한복가게를 차려 놓았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친구의 큰 딸이 냉장고에서 꺼내 놓은 사과를 깎다 말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향에서의 생활을 추억해 보았습니다. 저는 비록 같은 여자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바느질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랐습니다. 열여덟 살에 군에 입대해서야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신설부대라 매일매일 공사 현장에서 남자들과 함께 목고도 메고 삽질도 하고 들것과 곡괭이질도 하다 보니 군복이 자주 해졌습니다. 보초 근무를 교대하고 들어와 친구들이 모두 잠든 조용한 밤에 한 손에는 해진 군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바늘을 들고 어떻게 할까, 하고 한창 고민하던 중에 옆에 예쁘게 정돈 해 놓은 친구의 군복에 눈이 쏠렸습니다.
친구의 군복 바지는 해진 무릎을 예쁘게 기운 바느질 자국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돈해 놓은 친구의 군복을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보았습니다. 얼마나 꼼꼼히 바느질을 했는지 아무리 보아도 그대로 따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대로 흉내를 내가며 바느질을 했건만 예쁜 건 둘째 치고 제가 보기에도 듬성듬성한 바느질이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아침 기상 구령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군복을 입고 중대 대열에 섰습니다. 특무장이 제 앞에 서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자꾸 웃었습니다. 빨개진 얼굴을 어디에다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저를 분대장이 병실로 데리고 들어가 저의 군복을 벗으라고 하고는 바늘과 실을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로 인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 갈 것만 같았고 친구들 보기가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빨개집니다.
제대해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모든 것이 열악했던 북한에서 저는 추운 겨울이면 정전이 자주 되어 하는 수 없이 기름 등잔불을 켜 놓고는 잠자는 아이들의 머리맡에 앉아 아이들과 남편의 헤진 양말 뒤축에 전구 알을 넣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했습니다. 바느질을 하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남편이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웃는 모습에 그만 지난 군복무 시절, 제 바느질을 보고 웃던 동료들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귀밑이 빨개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내의도 실로 뜨개질을 해 입혔고 자꾸 커가는 아이들의 옷을 넓혀 입히기나 색깔 좋고 질 좋은 제 치마를 뜯어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 대한민국에 온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 바느질 한 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추운 겨울에도 얇은 양말을 신는데 작은 구멍만 나도 벗어 버립니다. 북한에서는 옷 한 벌 가지고 계절이 따로 없이 입었지만 이곳에서는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질 좋은 옷들이 너무 많다 보니 해지는 옷을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답니다. 때로는 시기가 지난 옷들을 아파트 수거함에 넣으면서 이 좋은 옷들을 추운 겨울에도 제대로 입을 것이 없어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 형제들에게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기도 합니다.
어느새 윤희는 손바느질로 예쁜 커튼을 만들어 베란다 창문에 걸었습니다. 넓은 거실이 더 밝고 환해 보였습니다. 그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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