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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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에 쫘락 쫘락 소낙비가 쏟아져 내리네요. 다음날 요양보호사 국가시험 응시 준비 때문에 분주한 마음을 달래느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시험장소인 인천광역시 구월중학교로 출발했습니다. 2시간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니 벌써 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꽉 차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겨우 자리에 앉았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학원 원장님은 시험에서 꼭 100% 합격 하자는 의미로 커피와 과자 등 간단한 간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구월중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소리는 쿵쿵 빨라졌고 괜스레 두근두근해지네요. 목적지에 도착해 이름이 적혀있는 교실로 찾아 들어가 지정된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간이 되어 감독관님 두 명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들고 들어왔고 학교 안내 방송에서는 규정과 규칙을 알려주네요.

맨 앞자리에 앉은 제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뒤로 넘겼고 감독관님은 주민등록증과 제 얼굴을 번갈아보며 시험 보는 사람이 본인이 맞는 지를 확인한 후 답안지와 시험지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필기시험은 40분, 15분 쉬고 실기 시험은 50분이었습니다. 워낙 성격이 남들보다 급한 저는 30분 이내로 모두 시험을 끝냈거든요. 내리던 보슬비도 어느새 멎고 언제 비가 내렸나 싶을 정도로 맑아졌지만 후덥지근합니다.

아침에 학교로 들어갈 때에는 미처 몰랐는데 시험을 마치고 학교 정문으로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저는 나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시험에 응시한 조카와 함께 한 명 두 명 사람들의 숫자를 세기 시작 했습니다. 나이는 40대 이상 50대, 60대 이상이었는데 1000명이 넘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저는 텔레비전에서 나이가 70이 된 분이 밤에는 택시기사로 일하시고 낮에는 고등학교를 다니시면서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컴퓨터를 통해 영어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만 사실 60이 넘은 이 나이에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국가시험에 응시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수많은 응시자들의 당당하면서도 환한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두 분의 마지막 임종을 보내 드린, 고향에 있는 언니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도 아마 요양보호사 학원이 있었다면 어렵고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복수로 배가 많이 불러있는 시어머님의 이부자리를 언니는 처음에는 코를 막고 두 발로 비벼 빨래를 했지만 시간과 세월이 가면서 정이 들어 마지막 임종에는 며느리인 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고 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그만 마음이 메어졌다고 했습니다.

3년 이라는 오랜 세월 자리에 누워있는 시어머니의 욕창을 알코올과 술, 그리고 소금물을 끓여 자주 소독해 주는 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형님들에게 보내라고 말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사실 내 고향에서는 치매가 있는 부모님을 작은 방에 가두어 방치해 두는 현실입니다.

문뜩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조카사위가 차를 가지고 왔네요. 차를 타고 음식점으로 가는 내내 이곳 한국이 아닌 내 고향에 있다면 국가 자격시험에 도전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았습니다.

나이 상관없이 성분에 상관없이 남녀 로소 상관없이 대학이든 고등학교이든 중학교에 입학해 원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이곳입니다. 하기에 우리 탈북자들도 이곳에 와서 고향에서는 성분이 안 좋아 또는 안면이 없어 갈 수 없었던 본인이 가고 싶은 이름 있는 대학에 입학하여 정말 원없이 한없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기에 제 주변에도 사회복지사 자격증 등 무료 자격증만 5개를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네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하면 하는 것만큼 내 것이 되고 또 노력 한 만큼 가질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 영예와 자랑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현 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