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과 개장국

초복인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우체국 직원이 구내식당에서 삼계탕을 먹고 있다.
초복인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우체국 직원이 구내식당에서 삼계탕을 먹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지난 초복 날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 삼각지 역 주변에 50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삼계탕 전문집을 찾아 갔습니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갔습니다. 미리 준비해놓은 듯 김이 물씬 물씬 나는 삼계탕이 식탁에 올라왔습니다.

친구들은 그새 못한 수다를 떠느라 신이 나서 웃고 떠들고 있는데 나이가 조금 위인 한 언니가 삼계탕을 받아놓으며 눈물이 글썽해 있었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조금 짠해졌습니다. 저는 분위기를 조금 바꾸려고 한마디 했습니다. 사실 수유리 쪽에 좋은 계곡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닭다리를 뜯으려 했다가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친구들은 좋아라, 다음 복날에는 꼭 그곳으로 가자고 약속했습니다. 고향이 평북도인 한 친구는 북한에서는 복날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한창 농사철에 밭갈이를 마치고는 몸보신을 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 개장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개장국에는 조밥을 먹습니다. 고춧가루를 뿌려 빨간 개장국에 노란 조밥을 한 그릇 말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으면 허한 속이 풀린다고들 합니다. 하기에 5월, 6월에는 발잔등에 떨어졌던 단고기 국물은 아까워서 혀로 핥는다고 할 정도로 단고기 영양이 제일 좋은 시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외국 사람들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개를 고기로 먹는 것을 혐오한다 하여 개장국을 단고기국이라고 명칭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사실 인터넷만 찾아봐도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개장국을 보양 음식으로 많이 먹어왔습니다. 일반 서민들은 개장국을 보양음식으로 많이 먹었는데 양반들은 체면을 차리느라 소고기를 넣고 끓인 육개장을 먹었다고 합니다. 삼복에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보양 음식을 먹고 더위를 이기기 위해 시원한 물가를 찾아 계곡에 발을 담그거나 또는 바닷가 백사장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잊었다고 합니다.

옛날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한국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 저는 북한에서 그냥 그저 6, 7, 8월의 삼복더위라는 말은 많이 사용했으나 이런 내력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친구들도 한 마디씩 했습니다. 아까 눈물이 글썽했던 언니는 남편이 광산에서 돌을 캤답니다. 그러다가 결핵이 걸려 심하게 앓았는데, 형편이 안 돼서 닭곰은 물론 개장국 한 그릇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채 오랜 병 끝에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는 혼자 삼계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먹자고 생각을 하니 그 아픈 기억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속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그 언니만의 마음 아픈 상처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고향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북한 사람들은 이 비극 같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평양에 살고 있는 제 언니에게도 손자가 있습니다. 이제 겨우 말을 뗀 4살짜리 손자 녀석이 있습니다. 고기를 먹겠다고 해 제 형부인 외할아버지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외손자 녀석의 손목을 잡고 단고기국 집으로 갔었는데 그렇게 고기를 먹겠다고 하던 손자 녀석이 끝내 고기 국을 먹지 않고 왔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외할미가 왜 고기 국을 먹지 않았는가 물으니, 하는 말이 노란 강냉이밥이 나와서 먹지 않았다고 말했답니다. 알고 보니 얼마 전에 자강도에 살고 있는 친할미 집을 갔었는데, 거기에서 먹은 강냉이밥을 기억하고는 단고기국 집에서 나온 노란 조밥을 강냉이밥으로 착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것이 한동안 먹었던 강냉이밥에 꽤 질렸던 모양입니다. 사돈네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외할미와 외할아버지는 귀한 손자에게 강냉이밥을 먹인 사돈이 원망스러웠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이곳 대한민국에서 먹는 보양음식을 혼자 먹기 참 미안해집니다. 그래서 삼계탕을 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인 그 언니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옛 이야기도 잠시, 삼계탕을 맛있게 먹은 우리는 다음 중복에 시원한 계곡에서 흐르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모여앉아 닭다리를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분명히 고향 생각에 눈물을 떨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