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로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진 8월입니다. 하기에 8월이 되면 남쪽에는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시민들은 동해, 서해, 남해 바다로 또 시원한 산과 계곡을 찾아 무더위를 식히고 있답니다. 그래서 요즘 도시는 도로가 뻥 뚫리고 고속도로는 휴가를 떠나는 자가용 승용차들로 꽉 막혀 분주합니다.
남한 생활 12년차로, 저 역시 이제 이곳 사람이 다 돼서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여름휴가는 고향이 제일 가까운 곳에서, 고향에 있는 남은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내보자...
저는 비무장 지대 부근 민간인 통제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 분께 미리 허락도 받아야 하고 날짜 약속도 해야 하는 것이 우선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오케이 승낙을 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마침 아들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삼겹살과 수박 그리고 깡통 맥주와 음료수,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아침이라고 하긴 늦은 시간, 우리는 부지런히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미리 약속된 통일교 검문소에 도착했습니다. 지인이 빌려준 장소는 그리 크지 않은 별장이었습니다만 서울시 일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냉방기도 있고 부엌 세간 도구도 갖춰져 있어서 살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완벽히 돼 있었습니다. 우선 저는 먼저 집에서 준비해 간 수박과 토마토로 시원한 화채를 만들었고 개구쟁이 손자 녀석들은 물장난을 하면서 더위를 가셔냈습니다.
며칠 전에 비가 와서 맑은 개울물은 좔좔 흘렀습니다. 작은 물고기를 보고는 좋아라 손뼉도 치고 달아나는 물고기를 따라 첨벙첨벙 따라가는 그야말로 개구쟁이들이었습니다. 그 속에 이 할미가 없으면 안 되겠죠? 저 역시 동심의 세계에 빠져 옷이 젖는 것도 모른 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습니다.
한참을 개울물 장난을 치던 자세로 마늘과 매운 청양고추를 넣어 상추에 싼 삼겹살 한 점을 한입에 넣었습니다. 별맛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저는 삼겹살 냄새를 북한쪽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마음은 삼겹살을 보내고 싶지만 오늘은 냄새만 북쪽으로 날라 갑니다.
북쪽 사람들, 오늘 삼겹살 구이 냄새에 코가 살찔 것 같다는 조카의 말에 우리는 크게 한바탕 웃었습니다. 내 가족의 웃음소리도 북녘 하늘을 날아, 고향에 있는 내 가족에게 전달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휴가를 갔던 민통선 부근 통일 다리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는 208km입니다. 이 거리면 내 고향 평양까지는 자가용 승용차로 불과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랍니다. 코앞에 두고,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없는 내 고향... 한 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고향을 바라보면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니 더더욱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날 저녁 부모와 같았던 언니는 약소하지만 작은 밥상에 한잔 술을 저에게 부어 주며 꼭 딸을 찾아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나이 많은 어머니는 통행증 없이 떠나는 이 딸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제 뒤에서 소금을 뿌려 줬습니다. 그랬던 어머니는 이 딸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대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다 눈을 감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런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동창들과 마을 주민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언제이면 나도 고향에 한 번 다녀 올 수 있을까, 과연 그날은 올지, 마음이 짠해 왔습니다. 이런 저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조카가 또 커다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제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오후엔 별장을 빌려준 지인분의 밭에서 들깨 모종하는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손에 잡아본 농사일이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여기 주인내외도 그냥 건강과 재미로 조금씩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남쪽 사람들에게 이런 작은 규모의 농사는 본인들의 건강을 챙기는 차원에서 하는 취미 생활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소토지를 죽기 살기로 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 한 하늘 아래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지만 농사짓는 방법도 농사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랐습니다.
가족과 함께 고향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며 보낸 단 하루의 여름휴가... 언젠가 고향에서 보낼 여름휴가도 기약해봅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