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더위를 모르는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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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무더위는 100년 만에 찾아온 폭염이라고 합니다. 워낙 더위에 꼼짝 못하는 저는 몇 주 35도 이상의 폭염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을 지경입니다. 소방대에서는 수시로 손전화기로 폭염 속에서 건강에 주의할 뿐만 아니라 낮에는 외출과 운동을 조심하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찜통더위로 환자들과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 그리고 어린이와 임산부, 환자들도 더위에 건강 주의하라는 뉴스도 텔레비전에서 연이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35도 안팎으로 기온이 오르면서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씨가 된다고 뉴스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밤에도 대지를 뜨겁게 달궜던 열기가 식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선풍기 앞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땀이 많이 흐르는 저로서는 출퇴근 시간이 막 두려울 정도입니다.

출퇴근길이 한 10분 정도 되나 마나 한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괜히 짜증이 나곤 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퇴근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방을 놓고 맨 처음 들어가는 곳은 샤워장입니다. 온몸에서 흐르는 땀을 씻으러 찬물을 몸에 끼얹는 순간 너무 차가워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궈져 있었지만 따끈한 물로 목욕을 했습니다. 비록 따끈한 물에 샤워를 했지만 몸은 개운하고 시원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2대의 선풍기를 동시에 켜놓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언제 샤워를 했는가 싶게 땀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순간 저는 선풍기 없이 살아왔던 지난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여기 서울 날씨와 평양 날씨는 얼마 차이가 없습니다. 겨울 날씨는 조금 차이가 있어도 여름 더위는 꼭 같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아이들의 잔등과 겨드랑이에 땀띠가 없어질 날이 없어 쓰리고 아파 잠을 자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빨갛게 돋아난 땀띠에 소금물을 연하게 타서 소위 소독을 해준답시고 솜에 묻혀 발라 주거나 식초를 물에 타서 소독해주곤 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습니다.

5평도 안 되는 하모니카 주택에서 사는 주민들은 야밤에 자다 말고 온 식구가 옷을 입은 채로 찬물에 목욕을 해야 했고 한 집, 두 집이 모이다 보면 어느새 18가구의 사람들이 한마당에 모여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회사에서나 혹은 마을에서 있었던 얘기로 밤을 보내고 다시 날이 밝으면 그 자리에서 아침 출근을 하는 것이 예삿일이 됐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불만 없었고 그저 본인들의 능력이 없는 탓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순진하고 순박한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직장에 출근해도 사무실과 현장마다 시원한 냉방 장치가 돼 있어 더운 줄을 모르고 시원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또 버스나 전철, 택시, 열차 그 어디를 가나 냉방 장치가 돼 더운 줄 모릅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선풍기는 물론 냉방장치인 에어컨이 있습니다. 제 옆에서 말없이 밥을 먹고 있던 아들이 한마디 했습니다. 지난 시절 고향에서는 더운 여름철을 어떻게 보냈을까, 지금도 고향 사람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공부와 작업을 하다가 더위에 못 이겨 쓰러진 친구들을 업고 병원으로 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친구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군복무를 하다가 혹시 또 더위를 먹어 쓰러지지나 않았을까, 죽지 않고 잘살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둘째 아기를 임신한 작은 딸이 에어컨을 구입했다는 전화였는데 너무 에어컨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다음 주나 돼야 설치가 가능하다는 전화였습니다. 정말 선풍기조차 없었던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한국에서의 행복한 새 삶은 정말 끝이 없습니다.

여기 한국 사람들은 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조건이 식당이든, 가정집이든, 회사든 모두 마련되어 있지만 그래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찾아 또는 바다를 찾아가곤 할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는 가까운 한강에 나가 피서를 합니다.

올해 아무리 무더운 찜통의 더위가 지속되고 있지만 더위를 모르고,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이 무더위에 선풍기와 에어컨은 생각도 할 수 없고 시간제 물을 공급받아 쓰고 있는 평양시 시민들은 찬물조차 자유롭게 몸을 식힐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 보려고 나무 그늘을 찾고 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