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손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리는 것도 모르고, 동네 나무 그늘 밑에서 한 주간 직장 동료들과 재미있었던 일과 조금 안 좋았던 일 등에 대해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의자에 앉아 우리들 수다에 귀 기울이며 참견을 하시던 어르신이 저를 부르며 손전화가 울린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황급히 손전화를 받아보니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복날이니 삼계탕을 먹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날이 복날이라는 것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러자고 흔쾌히 말했습니다. 아들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하는 일을 마칠 수가 있어서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9시가 되자, 아들은 이곳 남한으로 올 때 캄보디아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머니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북송돼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조차 모르는 외로운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삼계탕을 잘 하는 음식점에 가서 닭백숙을 시켰습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하는 외식이라 참 별맛인 것 같았습니다. 식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이라 더욱 꿀맛이었습니다.
아들이 친구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던 지난 시절이 더욱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복날은 음력 유월부터 칠팔월 사이에 들어 있는 무더운 시기로 초복, 중복, 말복을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이 시기의 무더위를 '삼복더위'라고 부르는데 남한에서도 역시 이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더운 여름 날씨를 뜻하는 '삼복더위' 때는 사람들이 땀을 많이 흘려 약해지기 쉽기 때문에 '복날' 하면 몸 보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복날마다 여름 보양식과 제철 여름 음식을 찾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잘 먹지만, 특별히 이 날을 잊지 않고 오리 백숙이나 닭백숙은 물론 단고기나 뱀장어, 추어탕을 비롯해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그저 말복이 지나야 날씨가 조금 선선해진다는 것밖에는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닭곰이나 오리 곰은 집안 식구가 병이 났거나 몸이 안 좋을 때 해 먹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향이 평양이라 당국에서 위생사업을 철저하게 실시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식용으로 쓸 가축도 마음대로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해마다 추운 겨울이면 개나 닭, 오리, 토끼 등을 부엌 바닥이나 창고에서 남몰래 키웠습니다.
하루는 기르던 닭을 한 마리 잡았는데, 우리 다섯 식구가 먹기엔 조금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닭 한 마리에 물을 많이 붓고 삶았습니다. 그리고 삶은 닭고기를 뜯어 국물에 띄워 주었습니다.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먹어 보는 닭고기 국이라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개를 키웠습니다. 북한에서는 음력 5, 6월에는 발잔등에 흘린 개고기 국물도 핥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그 시기엔 개고기를 먹어야 몸에 좋다는 말입니다.
그 때 남편이 기르던 개를 잡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본 작은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작은딸은 그 때부터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남한에 온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저는 별 생각 없이 가족과 함께 보신탕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딸이 말없이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따라 나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딸아이는 아직도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없이 식당으로 들어온 저는 작은딸을 위해 삼계탕을 시켰습니다.
북한에서는 병이 나고 몸이 허약하거나 해산을 한 후에나 먹을 수 있었던 닭곰, 삼계탕을 이곳 남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먹을 수도 있고, 삼계탕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좋은 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약이 된다는 소고기를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지만, 이곳 남한에서는 값이 저렴한 수입산 소고기나 아니면 좀 비싸지만 품질 좋은 한우 중에서 골라가며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고향 주민들은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에도 복날 보양식을 먹기는커녕 당장 먹을 쌀마저 부족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남과 북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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