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두고 온 고향과 동생에 대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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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저는 강원도 봉평면의 흥정 계곡을 다녀왔습니다. 저녁 늦게 봉평면에 도착한 우리는 강원도에서 유명하다는 황태구이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40도 이상 더운 온도 속에 황토, 맥반석 등으로 만들어진 방과 휴게 시설, 한증막 등을 갖추고 있는 찜질방으로 갔습니다. 넓은 찜질방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했습니다.

수면실에서 잠을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는 평창의 시골 길을 걷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맨 처음 우리가 간 곳은 1930년대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을 지은 작가 이효석 생가를 찾았습니다. 기념사진도 찍고 한 바퀴 돌아보고는 흥정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흥정 계곡 첫 입구부터 끝나는 곳까지 갖가지의 모양새로 지은 별장형 집, 펜션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1278m의 흥정산과 1309m의 회령봉에서 시작해 내려오는 계곡의 물은 바닥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였습니다. 울창한 숲과 협곡을 따라 거센 물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폭포도 있었고 넓고 평평한 지대가 있어 뱃놀이나 수영도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곡을 따라 물푸레나무, 싸리나무, 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맑은 계곡에는 예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손전화기로 쉼 없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좋은 공기도 마셨습니다.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혹은 걷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계곡 끝자락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노라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어 무더위가 시작됐고 아이들은 하나둘 맑은 계곡물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곁에 있는 가게 주인들은 장사를 위해 배를 띄워 놓기도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커피숍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 한잔을 시켜 손에 들고 허브나라로 들어갔습니다. 맑은 흥정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허브나라는 말 그대로 자연 속에 허브, 약이나 향료로 써 온 식물들을 보고, 먹을 수 있습니다. 허브나라에서는 100종 이상의 허브가 재배되고 있었고 아름다운 정원과 허브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 그리고 어린이 정원 등 재미있는 주제의 허브정원들이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중세 가든, 락 가든, 나비 가든, 코티치 가든, 셰익스피어 가든, 유리 온실 꽃집, 어린이 가든, 새초롱 마을과 허브 공예관, 향기의 샘, 터키 박물관 한터울, 파머스 마켓, 자작 나무집 등이 있었는데 모두 외국말이거나 낯선 말이라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허브 박물관 '향기의 샘'은 허브의 역사와 세계의 허브들에 대한 자료관과 생활관으로 꾸며 져 있었고 허브나라 농원의 음식점 '자작나무 집'에서는 직접 재배한 싱싱한 허브를 넣어 만든 갖가지의 허브 요리와 향긋한 허브차를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허브 나라를 방문한 사람들은 꼭 이곳에 들려 허브차를 마시며 허브 향기를 느끼기도 하고 빵에 허브 짬(잼)도 발라 먹어 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치 사진사라도 된 듯 카메라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갖가지의 허브 꽃들을 감상하면서 가까이에서 냄새도 맡아 보기도 하고 더러는 제가 잘 아는 것이라 어떤 데에 아주 좋은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활짝 핀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며 누군가 제 옆에서 코스모스에 대한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 소리를 듣노라니 지난 시절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북한에서도 기차 길 옆과 도로 옆에 코스모스 꽃을 많이 심습니다. 제 고향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 릉고개를 넘어서면 룡성까지 가는 직통 도로가 있습니다.

그 도로에 바로 코스모스를 많이 심곤 했는데,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습니다.

도로에 심은 가로수들 밑동에 흰색의 횟가루를 칠하게 돼 있는데 학교에서는 학급별로, 학급에서는 개인별로 맡겼습니다. 당시 제 동생과 몇몇 친구들도 횟가루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그 도로를 지나가던 김일성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로 인해 담임선생은 갑자기 벼락 승진을 하게 됐고 그 자리에는 김일성이 기념사진을 찍은 곳이라는 간판과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쇠줄로 쳐놓고 학생들은 새벽마다 그 자리를 손으로 쓸고 닦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김일성을 만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제일 락후 생들이 하루아침에 유명한 인사로 등장해 신문에 나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굉장했습니다.

그 뒤로 누구 하나 락후생들에 대해 늦게 왔다고 비판 한마디 하지 못했거니와 또 할 수도 없었습니다. 흥정계곡 허브나라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과 함께 두고 온 고향과 동생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