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찜통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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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말복이 지나고 8월도 어느덧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말복이 지나면 날씨가 조금은 시원해진다고 하지만 아직도 몇 분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무더위는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9월 초순까지도 무더위가 이어진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남한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들끼리 혹은 친구나 동료들끼리 7, 8월의 찜통더위를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 넓은 바다나 공기 좋고 물 좋은 계곡으로, 또는 해외의 아름답고 유명한 명승지로 여름철 휴가를 떠납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에 몰려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언제이면 저 사람들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족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역시 찜통더위가 계속되는 여름날, 제 생일이라고 큰 딸네와 작은 딸네 가족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함께 모여 얘기꽃을 피우는데 어느 덧 딸들은 서로 자기 자식 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너희들 키울 때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이 엄마는 다른 집 애들 못지 않게 귀하게 키웠다고 한마디 참견하면서 5년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족여행을 가자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왜 5년 후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딸은 우리 선우가 너무 어리고 그때 가면 엄마의 환갑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벌써부터 가족여행에 대한 설레임으로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저 역시 행복했습니다.

큰 딸이 냉장고 문을 열고 잘 익은 수박을 꺼내 큼직큼직하게 썰어 내놓았습니다.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온 작은 사위가 먹음직스럽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서울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한강 시민공원에 나와 돗자리나 텐트를 치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야경을 즐기고 있는 모습과 부산 해운대 앞바다를 비롯한 동해와 서해안 해수욕장과 이름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들이 장면마다 비쳤습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저의 입에서는 나도 이곳 남한에 와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큰딸은 돈을 빌려 달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돈 많은 부자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제 말에 작은딸도 의아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 남한으로 올 때는 우리 식구가 4명이었는데 어느 새 새 식구가 늘어 8명이 되었으니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라는 말에 우리 가족은 또 한번 크게 웃었습니다.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계속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미국에서는 찜통더위로 노인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지난 날 선풍기란 말도 모르고 살았던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33도 이상 되는 7,8월의 삼복더위를 어떻게 보냈을까? 정말 너무 더워서 숨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습니다. 삼복더위에는 짐승도 새끼를 낳지 않는다던데 왜 하필 우리 어머니는 저를 이 더운 삼복더위에 낳았는가?' 하고 지난날에는 한탄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8월에 두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너무 더워서 미역국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의 잔등과 목과 엉덩이에는 빨갛게 땀띠가 나 아리고 쓰리다고 울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땀띠약도 없어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장미 분을 발라주었고 찬물로 씻어주고 오줌 묻은 기저귀로 씻어 주기도 했습니다. 갓 출산한 산모가 몸을 식히느라 매일 찬물로 목욕을 했으니, 지금도 저는 그때 산후조리를 잘하지 못한 탓에 산후병이 도져 고통을 호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남한에서는 아무리 더운 찜통더위가 계속되는 여름이지만, 아이들의 땀띠는 보기 힘듭니다. 전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도 자가용차를 타도 냉방기인 에어컨이 나와 시원하고, 가정집을 비롯한 일터나 사무실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어서 더운 줄을 모릅니다. 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찬물을 끼얹던 그 시절이 이제는 먼 옛날 일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