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친구는 저에게 고향에 있는 친척들과 서로 소식을 전하고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사실 그대로 이따금씩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하면서 15년 전에 헤어진 가족의 소식을 알아보고 싶어 한다면서 방법을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의 가족과 편지로 왕래하고 있는 분을 소개하려고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북한 가족의 소식을 알고 싶다는 그 사람은 북한을 떠날 당시 아내는 35살, 본인은 37살 그리고 아들은 겨우 5살이었고 갓 태어난 딸애를 두고 집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고향을 떠날 때는 10년 동안 돈을 벌어오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고 러시아로 벌목하러 떠났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의 힘든 벌목 생활을 탈출한 지 어느덧 15년이 넘다 보니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에 갈 생각은커녕 가족과의 약속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장사와 농사일을 해 돈을 벌어 북한 당국 모르게 북한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겨우 돈 몇 푼만 보내주었고 2006년에 겨우 아내와 아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딸애의 편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서 온 편지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아빠, 나는 아빠가 우리 가족을 배반하고 살았기에 더는 이 세상에 없는 줄로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그래도 돈을 보내 주는 걸 보니 우리 가족을 버리지 않았네요. 저는 아빠 때문에 군에도 가지 못하고 내가 그렇게 희망했고 바랐던 평양 예술학교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조국으로 돌아오세요. 조국은 아빠를 관대 용서해 줄 것입니다."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던 딸애도 아빠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관대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우리 가족 이제는 모여 살자는 간절한 바람과 아빠 없는 설움이 크다고 썼습니다. 35살에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어린 철부지들을 키우며 살아온 아내 역시 조국으로 돌아와 용서를 받고 여생을 행복하게 살자는 부탁뿐이었고 남편의 소식이 없어지자 공장 당국에서는 집을 빼앗았다고 글을 썼습니다.
당시 공장에서 직맹위원장으로 일하던 남편에게 공장에서 건설된 아파트가 배정돼 남편이 러시아로 벌목을 떠난 몇 년은 그냥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행방불명되어 소식이 없자 공장 측에서는 아파트를 빼앗았고, 아내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허름한 단층집을 겨우 마련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굴도 모른 채 자란 딸애와 아들, 아내 역시 모두 조국을 배반한 아빠와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한결같이 관대 용서를 받고 같이 살자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과연 15년 동안 행방불명되었다가 돌아가면 그들 말대로 관대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까요? 또 그들이 말하는 조국과 당은 정말 아빠와 남편을 관대 용서해 주고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요? 중국에서 북한으로 2번이나 강제 북송되어 너무도 북한 당국을 잘 알고 있는 저는 코웃음이 절로 나왔고 북한의 독재 정권하에서는 진정한 가족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권의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그들이 너무도 가엾고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느새 아들이 아빠보다도 키가 훨씬 큰 모습과 엄마 키만큼 자란 딸애의 모습 그리고 어느새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아내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에 눈물이 글썽했고 그 비참한 현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 한 자리에 있던 친구와 저 역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름대로의 상처를 마음에 간직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친구들에게 저는 그날 점심을 사고 싶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빠른 시일 안에 다시 한 번 전화로 소식을 전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요란한 번개와 우레 소리와 함께 소낙비가 내리는 자정이 조금 지난 어제 밤 갑자기 손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이 시간에 누구인가 궁금해 하며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낯익은 친구의 목소리였습니다. 고향에서 소식이 왔는데 그 분의 아내가 일하던 공장이 뜻하지 않은 화재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지금 안전부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어진지 15년이 지난 이 마당에 남편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답니다. 정말 이 말을 듣는 저 역시 너무도 황당하고 이 말을 어떻게 전해 줄 것인가 하는 친구의 말을 듣는 저 역시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큰 사고이든 작은 사고이든 일이 터지면 우선 계급적으로 성분이 나쁜 사람들부터 의심하고 심문하는 것이 북한 사회의 현실입니다.
북한에서는 남자라면 누구나 나이가 되면 군에 가야하는 평범한 일이지만 아버지 때문에 군에도 가지 못하고 그렇게 절절하게 하고 싶은 예술 공부도 못하고 남의 눈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아들과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벌써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 철없는 딸, 그리고 삼십대에 헤어져 50이 넘은 지금까지 돌아올 남편만을 기다리며 험악한 세상을 이겨내며 살아온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죄를 짓는 것 같다고 자책하며 남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우리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 사람에게 차마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친구와 저는 전화로 곱씹어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에게 이런 사실을 그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 편의 장편 소설을 다 써도 모자라고, 몇날 며칠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이야기해도 못 다할 우리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에서나 볼 수 있는 눈물 나는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제쯤 우리 탈북자들의 비극 같은 인생이 없어질 런지 마음이 아프고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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