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같은 무더위와 잠 못 들게 했던 열대야에 장마까지 너무도 모진 8월이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불어 가을이 얼마 멀지 않음을 알리는 것 같네요. 여름 막바지를 앞둔 지난 주말, 늦은 감은 있으나 여름휴가 겸 가족 단합회 겸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천금 같은 손자들과 함께 충북 음성에 위치한 봉학골 계곡에 다녀왔습니다.
손자들에게 개학 기념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실내 공원으로 갈까 망설이던 중 7살짜리 손녀딸이 계곡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점찍은 곳이 바로 봉학골이었습니다.
벌써 계곡을 다녀온 경험이 많은 애들은 언제 계곡에 가는가 하고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만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물총과 각기 자기 튜브를 챙기느라 법석이었습니다. 두 가족이라 이제 10개월 된 아기가 먹을 분유에 과일과 과자, 고기를 비롯한 먹을거리에 물놀이 후 갈아입을 옷과 천막 등 형식대로 갖출 것을 다 갖추다 보니 한 짐, 두 짐이 마치 피난처로 가는 것처럼 많았습니다.
거리는 1시간 20분 거리였습니다. 쉴 새 없이 서로 쫑알쫑알 대는 손자 녀석들과 함께 차 안의 여행 역시 즐거웠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놀랐습니다. 새벽 일찍 출발했기에 너무 이르지 않은가 했는데 이미 주차장에는 차가 너무 많아 주차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한 30분을 돌고 돌다가 겨우 주차를 했는데 그 다음엔 천막을 칠 자리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위가 천막을 치는 동안 성격이 급한 저는 손자 녀석들과 함께 시원한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계곡은 물놀이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물놀이장을 만들어 놓기도 했고 중간중간 쉼터인 정자를 만들어 놓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돗자리를 깔고 시민들이 편리하게 즐거운 휴식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놓기도 했고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조각공원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맑고 차고 시원했습니다. 작은 물고기도 있어 아이들이 너무 좋아 했습니다. 5살짜리 손자 녀석은 물고기를 잡느라 분주했었고 저는 손자가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자고 해 물속에서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가지고 간 물총과 튜브와 배를 타고 신이 났습니다. 손자들 뿐 아니라 저 역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애들과 함께 물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계곡에 놀러 온 모든 사람들 역시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녀들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당일치기로 갔었지만 1박 2일로 온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점심은 삼겹살과 소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높은 산 계곡이라 공기도 좋고 물 좋은 곳이라 별미였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 잔도 했습니다. 맑은 계곡물에 몸 담그고 앉아 시원한 깡통맥주 한 잔.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마음의 향수를 느꼈습니다. 모든 부모들과 할머니들이 그러하겠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특히 손자 녀석들과 함께 보내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마치 온 세상을 나 혼자 독차지한 듯 느껴졌습니다.
이제 10개월 된 손녀를 계곡물에 담가 놓고 좋아하는 딸과 사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잠깐 지나간 세월, 우리 아이들을 키우던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나도 저런 젊은 시절이 있었고 우리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꿈이 있었고 소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고 열악했던 탓으로 부모들이 마음은 다 하나같으련만 저 역시 다른 부모들보다도 더 많이 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해주지 못하고 또 유별나게 엄한 요구성을 높였던 생각을 하니 나름대로 또 한 번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저 대성산 동물원과 유원지 또는 만경대 유원지는 1년에 한 번 정도로 겨우 가족과 함께 다녀오곤 했었고 대동강 보트는 단 1번밖에 태워 주지 못했습니다.
중학생인 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항상 집단체조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별로 가족이 모일 시간은 별로 없기도 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통행증은 물론 교통수단도 턱없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가족단위로 가 볼만한 곳도 별로 없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곳 한국에는 그 어디든 자유롭게 편안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비행기든 기차든 버스든 자가용 승용차든 다 열려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고속도로가 확 뚫려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만 제가 처음 이곳 한국에 왔을 때 고속도로 건설과 거리마다 줄지어 달리는 고급 승용차를 보고 놀랐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처음에 보고 놀랐던 고급 자가용 승용차를 제가 타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공기 좋고 산세 좋은 계곡과 바다로 또는 맛있는 별미를 찾아 갑니다. 저는 오늘도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영원한 행복의 삶과 건강을 빌어봅니다. 사랑하는 우리 개구쟁이 손자 녀석들과 함께 봉학골 계곡의 맑은 물에 몸을 담가 여름의 더위를 식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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