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에 있는 청계천에 다녀왔습니다. 청계천은 길이 10.8km로 북악산인 왕산, 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모였다가 왕십리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이었는데 청계천은 자연 하천 그대로 홍수가 나면 민가가 많이 침수되어 물난리를 일으켰고 제가 2003년 대한민국에 금방 왔을 때만해도 동대문에 가면서 본 청계천 물은 매우 불결하였습니다. 그러나 2003년 7월에 시작된 청계천복원사업은 빠른 시간 안에 동아 일보 청사 앞에서 신당 철교까지 5.8km 구간이 건설되어 시민들의 즐거운 휴식 공간이 됐습니다.
광화문 거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어린 손녀는 청계천 주변에 있는 높은 빌딩들을 올려다보며 '할머니 저 집에는 누가 살아?' 또박또박 야무지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이래서 아이들은 대도시에서 키워야 한다." 고 하면서 평택 촌놈이라고 놀려 주었습니다.
손녀는 '촌놈 아니거든.' 할미는 '촌놈이거든.' 하고 주거니 받거니 할미와 이제 겨우 다섯 살짜리 손녀가 말다툼하면서 동아 일보 신문사 바로 앞인 청계천 입구로 내려갔습니다. 폭포처럼 거센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7색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언제 다툼질을 했냐는 듯이 손녀는 물을 보더니 매우 좋아하며 넘어질 듯이 막 달려 내려갔습니다. 이미 뜨거운 햇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그늘진 다리 밑에 모여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저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시원하고 이마에서 흐르던 땀도 식는 듯 했습니다. 서울 시민들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을 비롯한 외국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 손녀, 손자가 귀엽다고 머리를 쓸어 주고 웃으며 반겨주는 중국 사람들에게 제 딸들은 제법 중국말로 말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노라니 제 마음 역시 뿌듯했고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까지 있어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물속에 만들어 놓은 둥근 과녁을 향해 동전 100원짜리를 던지니 물방울을 튕기며 퐁퐁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저는 마음속으로 소원도 빌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늘진 좋은 자리를 잡아 앉았습니다. 다섯 살짜리 손녀가 신발을 벗어 던지며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자 이제 겨우 20개월 된 손자도 신발을 신은 채로 물속으로 첨벙 따라 들어갔습니다. 손녀는 재잘 재잘 말을 잘하지만 말을 잘 못하는 작은 손자는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저도 신발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갔습니다. 너무도 시원하고 온 시름이 없어지는 듯 했습니다. 저는 맨발로 청계천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작은 오작교 다리도 있고, 연인들이 산책하기 좋은 우거진 숲으로 된 구간도 있고, 양쪽에 심은 싱그러운 자연산 풀잎 냄새가 온몸에 와 닿아 기분이 매우 상쾌했습니다.
싱그러운 풀냄새에 취해 저는 북한에서도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었던가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 아이들과 함께 대동강에서 보트를 탔었는데 당시 12살이었던 큰 딸이 물이 무섭다고 바지에 오줌을 쌌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집으로 가겠냐고 꾸지람을 하고 있었는데 좋다고 떠들썩하는 둘째와 셋째를 보고 넓은 대동강 물 한가운데서 아이 셋 모두를 꾸지람했던 기억이 나 혼자 웃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작은 딸이 그 지나간 추억을 끄집어 내 다시 한 번 우리 식구는 크게 웃었습니다.
역시 손자들은 서로 물장구를 치느라 입은 옷이 이미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손자들 옷을 갈아입히고 이순신 장군 동상 앞으로 갔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은 17미터 높이라 멀리서도 볼 수가 있을뿐더러 주변에 분수대를 만들어 놓아 우리 아이들의 더위를 식혀 주는 좋은 물놀이 공간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만들어 놓은 분수대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즐거워하는 다른 집 아이들을 구경하며 웃고 있는데 순간 5살짜리 손녀는 내 손을 뿌리 치고 분수대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금방 갈아입힌 옷을 또 적신다고 제 엄마는 큰 소리로 꾸지람을 했지만 작은 손자까지 아랑곳 하지 않고 강아지 마냥 뛰어 들어 갔습니다. 저는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평택에서 언제 또 서울 구경 오겠느냐며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린이 집에 다니는 손녀는 작은 거북선을 보면 무슨 배인지 묻기도 했고 이순신 할아버지는 어떤 할아버지인가도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 엄마는 시연이 다 커서 학교에 가면 배운다면서도 이순신 할아버지는 옛날에 거북선이라는 배를 만들어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놈들을 물리친 용감한 할아버지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손녀는 머리를 끄덕 끄덕하며 진지했습니다. 그러더니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는 그리로 가자고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군인 장병들과 경찰관이라면 멀리서 보기만 해도 좋아하는 손녀는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 서 있는 여자 경찰관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배꼽 인사를 해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흘러 배가 출출해진 우리는 한정식 식당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는 비록 올해 여름휴가는 가지 못했어도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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