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제가 손녀딸과 함께 네다섯 개의 작은 바퀴가 일렬로 달려있는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연습에 푹 빠져 있답니다. 그래서 7살짜리 손녀딸은 저녁 시간만을 기다립니다. 유치원과 발레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저녁 6시가 됩니다. 밥을 먹으면 밥상도 치우기 전에 손녀는 벌써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출입문 입구에 서서 졸라댑니다. 저는 매일 저녁마다 1시간씩 손녀딸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데 도와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손녀의 생일 선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선물했거든요. 워낙 겁이 많은 손녀였기에 처음 걸음마 떼는 연습을 시킬 때에는 조금 어렵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에는 곧잘 탑니다. 손녀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손전화기 동영상으로 찍기도 하고, 사진에 담기도 해봅니다.
오늘도 손녀의 인라인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들어와 씻고 나서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손녀의 대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지난 추억을 해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스케이트 선수생활도 조금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만 북한에도 인라인 스케이트가 있었거든요.
제가 선수 생활을 했던 유년 시절이 지금은 먼 옛날 추억이 됐지만 당시 북한에도 로라 스케이트라고 하는 스케이트가 있었습니다. 철없는 시절 부모님에게 로라 스케이트를 구입해 달라고 하루종일 떼를 쓴 적 있었습니다. 스케이트는 겨울에만 탈 수 있지만 로라 스케이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없이 탈 수 있어 좋았거든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 쪼이는 한 여름, 김일성 경기장의 넓은 운동장에서 로라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언니, 오빠들을 보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국제선수들만이 로라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일반 어린이들이 타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거든요. 하기에 로라 스케이트 파는 곳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아동 백화점 운동기구 매장에서 판다는 얘기를 들은 저는 주말마다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던 추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로라 스케이트를 구입 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하기에 저는 이곳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들과 함께 여의도 공원을 찾아 나이 50이 지난 나이가 되어서도 이곳 한국에 와서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것으로 어릴 적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북한에서 살던 시절, 운동에 소질이 많은 아들을 축구 선수로 키우기 위해 축구반에 입학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우리 아이들조차 희망과 포부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저는 요즘 하루하루 몰라보게 자라고 있는 내 손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보게 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창 손녀의 인라인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있는데 동네에서 사는 듯한 한 점잖은 분이 다가와 제법 잘 가르치고 있다고 치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어린 시절 스케이트를 조금 타본 경험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역시 뭔가 다르다고 말하면서 손녀가 예쁜 데다 아주 당차게 잘 탄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든 부모들 마음이 다 그러하듯이 손녀 애를 칭찬해주는 바람에 제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저는 요즘 손녀에게 웬만한 수학 공부와 한글 공부까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글 공부가 조금 미약한 손녀에게 과거에 제 자식들에게 가르치던 방식대로 요구성을 조금 높였을 뿐인데 옆에서 잠깐 지켜보고 있던 딸이 애 공부 시키면서 무슨 협박을 하느냐고 해 조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쫑알쫑알 손녀와 싸우기도 하지만 참 행복합니다. 아침이면 손녀를 차에 태워 유치원에 보내고 손녀가 돌아올 시간이면 아파트 단지 내 정문에서 손녀를 기다리고 또 공부까지 가르치고 인라인 스케이트도 가르치다 보면 하루가 너무도 빨리 지나갈 뿐 무척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손녀와 할머니 사이가 때로는 친구 사이 같기도 하지만 때론 학생과 선생님 사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 누가 할미이고 누가 손녀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거든요. 비록 처음 듣는 '할머니'라는 소리가 조금 새롭게 들리기도 했었고 또 '할머니' 하면 벌써 나도 살만큼 다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쓸쓸하기도 했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행복한 삶 속에서 때로는 제가 지금 북한에 있었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 봅니다. 이곳 한국에 왔기에 진정한 인간의 삶이 뭔지도 알았고 북한에서 흘려보낸 시간을 생각하며 조금 더 좋은 삶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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