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찜통더위는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되었습니다. 가을이 왔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벌써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나름대로의 사색에 잠겨 있는데 남편이 다급히 부르네요. 텔레비전 MBN방송에서 북한으로 재 입북한 임지현이 북한 대외 선전용인 우리 민족끼리에 출연한 영상을 공개 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한 당국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자유를 찾아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이곳 한국에 와서 모란봉 클럽과 애정 통일 남남북녀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던 그가 갑자기 북한 선전 매체에 출연해 이곳 남한에 대해 거짓말을 꾸며 가면서 비난하고 헐뜯고 있는 비열하고 불쌍하고 초라한 그의 모습에 격분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임지현과 함께 인터뷰 대담을 하고 있는 재미 교포 노길남 역시 73년에 미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기자 활동도 한 인간으로서 이곳 한국 자유민주주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거든요. 또한 임지현이 조국이 그리워 물살이 빠르고 차디찬 두만강 물을 헤엄쳐 건너갔고 군인들이 외투를 입혀 주고 나무불도 때주었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임지현이 두만강을 건너 갈 당시에는 아마도 두만강 얼음이 잘 풀리지 않았을 것이기도 합니다만 제 입에서 말한 것처럼 조국을 배반한 자에게 북한 군인들이 뜨끈한 온돌방에 모시고 북한으로 말하면 고급 수준으로 대접해 주었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곳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노길남이와 아무 거리낌없이 없는 사실을 엮어 가면서 거짓말을 하려니까 얼마나 속이 안 좋았을까, 또 아무리 북한 당국의 각본 그대로 연출을 한다고 해도 두 사람의 뻔뻔한 얼굴이 그대로 안겨 왔습니다. 이곳 남한에서 이름만 들어 봤을 뿐 한 번도 만나 보지도 못했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치 잘 알고 있는 마냥 거짓증언도 서슴치 않는 두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 반생을 살아온 저로서는 북한에서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목숨 하나 지키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가는 임지현의 모습을 보며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지현은 지금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방송에 출연하는 그 순간에는 비록 웃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감시와 눈초리를 받고 있을 것이고 그의 모든 사생활 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 하나 말 한마디 자유가 없습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벼르지(벼룩)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곳 남한에 와서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던 임지현이 과연 자유가 없는 강한 통제 속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임지현의 웃음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그의 삶 속에는 천국 같았던 이곳 남한 생활이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었던 경험이 절실히 말해 주고 있거든요.
청진 집결소에서 탈출해 두만강 연선 친척 집에 당분간 머물게 되었습니다.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허줄한 내 옷차림을 보고 중국 사람이 아닌가 하고 물어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나 자신도 모르게 말과 행동이 벌써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거든요.
이곳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3만 3천명이 넘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이곳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강제 입국시켜 갖은 거짓으로 이간질을 하고 선전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남아있는 인민들이 두 번 다시 탈북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독재와 탄압이 아니라 인권과 자유를 줘야 합니다.
지난 세월처럼 당국에서 주면 먹고 안 주면 굶어 죽는 인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임지현이 과연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올챙이 한 마리가 개구장물 더럽힌다는 말은 있습니다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된 자랑과 영예와 긍지를 더 깊이 느낄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실감 있게 뼈와 살로 간직 하면서 더 튼튼하고 건장하게 적응할 것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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