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되는 9월도 벌써 열흘이 지나고 있습니다. 9월하면 또 추석이 있는 달이죠. 벌써부터 추석 준비로 마음은 들뜨고 분주한데 어디선가 코스모스 진한 향이 솔솔 코를 찌릅니다. 하늘 높이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는 모습과 더불어 길거리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나기 시작해 더더욱 가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한들한들 바람에 날리는 코스모스 꽃잎이 햇빛에 더더욱 아름답게 빛나네요. 달리는 차창 밖으로 코스모스를 바라보노라니 두고 온 고향 생각이 납니다. 차 창문을 활짝 내렸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의 길거리에 코스모스 꽃을 너무도 많이 심고 가꾸었거든요.
지금도 그러하지만 지난 시절 이미 오래전부터 평양시 서성구역 연못 동에서 시작되어 룡성으로 가는 도로 양옆에는 코스모스 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청계중학교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코스모스 꽃을 많이 심고 가꾸었습니다. 제 동생 역시 늦은 오후시간에 담임 교사와 함께 코스모스 꽃을 심고 가꾸다가 김일성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되어 접견자로서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 도로의 활짝 핀 코스모스 길도 역사가 50년이 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오고가는 통학 거리였던 룡성도로에 핀 코스모스 꽃을 별모양으로 뜯어 비행기를 날려 보듯이 누가 날린 코스모스 꽃이 더 오래 높이 날리는가 승강이질도 했고 또는 오늘 하루 재수가 어떤지 도 맞춰보기도 하던 코스모스 꽃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지금처럼 흰 구름이 마치 흰 솜뭉치처럼 하늘 높이 뭉게뭉게 떠 다녔습니다. 제가 탈북하기 전 무산역과 주초역 사이에 핀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면서 문뜩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슬픈 마음이 들어 코스모스 꽃잎을 뜯어 별모양으로 만들어 입으로 푸 하고 불어 보기도 하고 돌아 올 수 있을까, 없을까를 꽃잎을 뜯어 점치면서 앞으로 좋은 일만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코스모스 꽃 한 송이를 꺾어 손에 들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한 잎 한 잎 별모양으로 만들어 날렸습니다. 그야말로 고향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갔습니다. 한 송이의 꽃을 들고 지나간 추억과 더불어 한창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번 추석을 맞으며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간 실무접촉이 있다는 소식이 나옵니다.
순간 마음이 슬퍼지기도 하고 짠하기도 합니다. 먼저 생사 확인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남북이 갈려져 70년이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한 명 두 명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그리운 고향을 가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하기에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사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 합니다.
이산가족이었던 저의 어머님 형제들 역시 모두가 세상을 뜨고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해방이 되자 어린 두 자녀의 손목을 잡고 남편의 고향을 찾아 이곳 남한으로 오신 나의 이모님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나이 90이 되셨지만 북한에 남아 있는 형제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뜨셨기에 이산가족 상봉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에게는 누구나 나름대로의 가슴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잠깐 친척집 방문을 위해 이곳 남한으로 내려 오셨다가 전쟁이 터져 가지 못한 분, 6.25전쟁으로 인해 북한군에 끌려가 소식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 1.4후퇴로 이곳으로 내려온 수많은 분들이 가족과 갈라져서 이산가족의 슬픔을 안고 살아온 지 70년이란 세월 흘렀습니다.
고향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어느덧 그들의 머리에는 흰서리가 내렸고 가족의 얼굴조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남긴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죽지 않고 살아있기만을 애타게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그분들의 애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저는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북한을 탈출해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서 북한과 중국으로 나뉘어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이 되어 내 가족을 찾지 못하고 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고통을 이미 겪은 저로서는 그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기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기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 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또는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제나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평양까지는 승용차로 4시간이면 얼마든지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이건만 빤히 바라보이는 고향인데도 갈 수 없는 아픈 마음과 슬픔이 커집니다.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고 내 부모와 내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매일 매일 나오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 옵니다. 마음부터 쓸쓸해지는 이 가을과 또 이산가족 상봉 소식으로 슬픈 마음을 오늘은 활짝 핀 코스모스 꽃과 함께 달래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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