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녹화를 마치고 꺼졌던 손전화기를 켜니 국제 번호가 찍혀 있었습니다. 중요한 국제 전화를 받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야속함과 누굴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재차 딸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 왔습니다. 딸은 고향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향에 있는 조카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제 손전화가 꺼져 통화가 안 된다며 제 딸과 통화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날 때에는 겨우 조카의 나이가 10살이었습니다만 고향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전화에서 들리는 성인이 된 조카의 목소리는 분간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조카는 전화해서 첫마디부터 엄마인 제 동생이 다리를 쓰지 못하고 바깥출입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사실 목소리 하나만을 듣고는 조카라는 것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저는 한참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제가 처음 고향을 떠나올 때와 강제 북송 이후 있었던 얘기들을 묻고 또 물으면서 확인을 했습니다. 특히 지난 2년 전에 조카가 군 생활 기간에 익지 않은 고기를 먹고 혈관 속에 기생충이 생긴 고통으로 군 생활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집에 와있다는 얘기를 듣고 시장에서라도 약을 구입해 치료하라고 도와주었던 이야기와 평양에 살고 있는 이모는 이모부의 병으로 나다닐 수가 없다는 얘기, 막내 이모가 갑상선 암에 걸렸다는 얘기로 대충 확인이 됐습니다.
고향에서 식량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해도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을 수 없어 생활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조건이니 저는 이곳 대한민국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 한국에서 지난 기간 북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고향에 있는 형제들에게는 이곳으로 오라고 대담하게 선뜻 권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두만강을 넘어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인신매매꾼들과 납치꾼들에게 당한 말 못할 고통의 상처와 중국에서 강제 북송경험이 많은 저로서는 그들도 탈북하다가 나와 꼭 같은 길을 겪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기간 북한주민들의 생활은 하나도 변한 것 없는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와 마찬가지였죠.
하기에 생지옥 같은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인간다운 새 삶을 살도록 권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카딸은 한국으로 왔으면 하는 제 의견에 첫 답변이 무섭고 두려워 정작 쉽게 결심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실 국경 연선에서 살고 있는 조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두만강을 마치 제집 드나들듯이 넘나들었던 경험이 많습니다.
출입문을 열면 두만강 맞은편에 보이는 중국으로 당장이라도 신발을 벗어 들고 물속으로 뛰어 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북한당국에서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해 기자 회견을 하고 제 3국을 통해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을 끝까지 따라가 강제 북송해 총살하고 그 가족들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있어 두렵다고 말입니다.
조카는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말문이 막히고 가슴과 머리를 쇠뭉치로 한대 맞은 듯 숨이 턱 멎고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죽지 않으면 살겠지'하는 마지막 결심을 먹지 않으면 그 대가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그 험난한 길을 대담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꼭 엄마 병을 치료하고 함께 출발하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하고는 나름대로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제 마음 역시 너무도 아프고 쓰렸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자유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와 살로 느끼고 있는 저로서는 북한에서 태어난 것조차 싫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 부모 형제가 자유가 없고 부족한 것이 많은 북한 땅에서 태어났을까, 하루빨리 북한의 3대 세습독재는 무너지고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민주화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정은은 탈북자들을 납치해 강제 기자회견을 하고 공개 총살하고 정치범 관리소로 보내는 등 북한 주민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고 있습니다. 힘없고 권력 없는 주민들은 굶주림으로 고통, 북한 당국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북한의 독재와 세습이 없어지지 않고, 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민주화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한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북한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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