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습니다. 김정일 독재정권 타도와 북한주민 해방을 위해 결성된 북한인민해방전선 결성 1주년을 맞아 자유북한방송국 기자들과 북한인민해방전선 참모일꾼들은 가족과 함께 1박 2일로 인천시 중구 을왕도에 다녀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털보'라는 이름의 고급 숙박 시설인 펜션으로 들어갔습니다. 옆집 별장들에서는 많은 차량이 연이어 들어가는 우리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인가 하고 밖에 나와 구경도 했습니다.
앞에는 넓은 바다가 있고 뒤에는 작은 산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맑은 공기를 마시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1, 2층으로 된 별장이었습니다. 저는 친구 영옥이와 함께 일단 짐을 풀고 방을 정했습니다. 간단한 총화 사업과 앞으로 북한인민해방전선이 해야 할 과업들에 대해 토론들을 하고 나서 저녁으로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조개구이와 소고기구이를 해 먹었습니다.
모임에는 제가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었고 이곳 남한에 와서 함께 한 회사에서 근무한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도 빠지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우리 부모님께서 지어준 이름과 대한민국 입국 연도와 고향은 어디이며 지금 이곳 대한민국에서 할머니가 되어 손자들과 즐거운 인생과 행복을 만들어 가며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큰 박수가 이어졌고 이구동성으로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참가자들은 역시 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이곳 남한 사람들이었다면 고기구이는 남자들의 몫이었겠는데 연탄불 앞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연기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비벼대며 고기 굽느라 여자들은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구웠건 간에 2층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조개구이와 소고기구이는 정말 별미였습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저는 몇몇의 친구들과 슬그머니 나와 노래방을 찾아갔습니다. 노래 방 사장님 역시 마음이 후하고 좋은 분이라 우리에게 무료 시간을 많이 보태주어 2시간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시간쯤 시간이 흘렀는데 옆방에서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려 슬그머니 나가 보니 다른 친구들도 노래방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대다수가 노래를 잘 불렀는데, 노래를 잘 부르는 인재들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하지만 끼가 있어 춤을 잘 추는 사람들도 있었고, 즐겁게 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 주자 작은 방에서 젊은 시절 북한군에서 배운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둥켜안고 이야기를 하러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시 3차로 별장 1층에 모여 시원한 맥주에 북한 마른 명태를 먹었습니다. 얼마나 공기가 좋은 곳인지 피곤함도 몰랐습니다. 영옥이와 저는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우리 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넓은 바다 수평선 저 멀리에 대고 무작정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몸에 쌓이고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고기잡이를 하는 배들이 우리들의 소리를 듣고 답변해주듯 반짝반짝 신호를 해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한결 즐거워졌습니다. 쌀쌀한 바닷바람에 한 시간 정도 모래 바닥에 앉아 서로 가슴 아픈 사연과 지나간 추억들을 나누며 소리 내어 울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고 보니 춥기도 했고 찬 이슬에 옷도 젖었습니다. 시간은 새벽 3시였습니다. 우리는 별장으로 들어와 이불을 펴고 누웠습니다.
아침 7시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 저는 시원하게 몸을 씻고 간단한 화장품을 바르고는 1층으로 밥을 먹기 위해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속사정을 모르는 동료들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얼마나 불렀으면 목소리가 변했냐면서 놀려 주기도 했습니다. 영옥이와 저는 얼굴을 마주 보며 싱긋 웃고 친구들이 지어준 시원한 된장국에 흰쌀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저는 친구들과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작은 터전에 있는 파란 배추 포기에는 막 노란 속고갱이가 생기고 있었고 여러 개의 화분에는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채 익지 않은 밤송이를 땄습니다. 가시가 달린 밤송이 가지를 꺾어 봉지에 담아 가방에 챙겨 넣는 영옥이의 모습을 보며 제가 집에 있는 맏아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밤송이로 잔등을 긁어 주라고 우스갯소리로 한마디 하자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10시가 조금 지나 우리는 천천히 서울로 올라올 준비를 갖추고 각기 차를 타고 왕산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해수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제각각 바다의 정취를 즐겼습니다. 날랜 동작으로 추운 줄도 모르고 옷을 벗고 바닷물에 뛰어 들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모래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옷을 벗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100m를 헤엄쳐 가면 10만원을 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적셨습니다. 조금 찬 기운은 있었지만 시원했습니다. 약 2시간 정도 모래밭에 앉아서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승용차들을 타고 서울로, 대구로, 경기도로, 인천으로 각기 출발했습니다. 늦여름 바다의 추억을 안고 서울로 올라오는 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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