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새 문화 복지 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고성리 효도마을에 자원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충청남도 '공주'하면 밤이 유명한데 밤 수확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이었습니다.
제가 이곳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돼 공주에 안보 강연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변 산들마다 온통 밤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보고 감탄의 목소리가 저절로 나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저는 겨울이 오면 공주 밤을 골라 구입해서 고구마와 함께 삶아 먹기도 하고 밤눈을 따고는 닦아 먹곤 했습니다. 그리고 밤 이삭 주이는 몇 번 가 보았으나 이번처럼 밤 수확은 처음이었습니다.
자원봉사는 말마따나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냥 순수한 마음에서 돕는 것인데 떡 만지는 사람 떡 먹기 마련이라고 떠나기 전부터 밤 청대 해 먹을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어린 손녀 역시 자기도 밤을 좋아 한다고 많이 따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드디어 주말, 저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을 출발해 오전 10시가 되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공주시 자원 봉사단 회장님과 함께 단원들이 먼저 밤을 주우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로 처음 보는 분들이라 인사를 나누고 단장님의 간단한 소개를 들었습니다. 공주 일대에는 밤나무가 지척에 널려 있지만, 특히 정안면 고성리 밤은 무농약 유기농 농산물로 자연적으로 낙과한 알밤만 수확해 판매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차령산맥의 깊은 골짜기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빼곡한 밤나무들 때문에 공기가 아주 맑고 물이 좋았습니다. 저마다 작은 자루 한 개와 집게를 들고 밤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마침, 어제 저녁 비가 내렸고 바람이 불은 뒤라 골짜기마다 밤나무 밑마다 밤알들이 소복하게 떨어져 있는 게 환상적이었습니다.
머리와 이마에 떨어지는 밤알을 맞으면 아플 텐데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친구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산비탈을 오르내렸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 같았습니다.
고향이 함북도 회령인 친구는 밤나무를 처음 본다면서 밤알들을 두 손에 들고 군밤 타령이라는 노래에 춤까지 추어서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남한에서 태를 묻고 살아온 한 어르신은 세상의 모든 꽃들은 여성들을 상징하지만 유일하게 남성을 상징하는 꽃이 바로 밤꽃이라는 얘기를 해줬습니다. 어르신은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혼례식을 올릴 때에 밤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고 혼례식이 끝나면 동네 여인들은 밤을 재빨리 집어 가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주시 봉사단 단장님이 서양에서도 밤 꽃 향기는 남자의 향기라고 비유한다면서 평소에 새침하던 여인도 밤나무 숲을 함께 걸으면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말도 있는데 아마 남자의 향기에 취해 그런 게 아니겠냐고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나이가 들면 이곳 밤나무골에 와서 살아야겠다고 농을 해서 우리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밤나무 숲은 정말 끝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공주시 봉사원들이 준비한 장작불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막걸리를 한잔을 했습니다. 나이들면 밤나무골에 자리를 잡고 살겠다던 친구는 국자를 들고 북쪽 노래 '반갑습니다' 와 남쪽 노래 '무조건'을 부르며 흥을 돋았고 공주시 봉사단 단원들도 답가를 불렀습니다.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점심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주머니를 들고 밤을 주우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오전에도 그만큼 주었는데도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고 또 그 만큼이 또 떨어졌습니다.
저는 은근슬쩍 아기 주먹만 한 밤알들을 알알이 골라 양쪽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손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우리는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올 차비를 했습니다. 봉사단 단장님이 우리들에게 꽤 묵직한 밤 주머니를 건넸습니다. 수고했다는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밤이 들어 있는 봉지를 받으며 앞으로 생활을 동그랗게 하겠다고 해서 또 한 번 모두가 산이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저녁 퇴근시간이라 많이 막혔습니다. 저는 차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밤에 대한 추억을 나눴습니다. 제가 군 복무를 하던 황해도에도 밤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중대 병실 앞마당 한 가운데 쌍둥이 밤나무가 있었는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아침에 제일 먼저 기상해 밖으로 나와 수북이 떨어져 있는 밤알들을 군모에 담았습니다. 잠깐이면 군모에 한가득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밤나무로 인해 병이 돈다고 부대에서 갑자기 밤나무를 잘라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북도가 고향인 친구도 당의 방침이라고 하면서 마을의 밤나무를 모두 잘라버렸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과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고 건강에도 좋은 이런 밤을 왜 모두 없앴을까? 정말 무슨 병이 돌기는 했을까? 의구심을 갖는 친구들도 있었고 겨울에 밤나무로 밥을 지어 먹고 밤나무 연기에 질색해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 등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한 저는 가져온 밤을 공주시 단장님이 가르쳐 준 대로 소금물에 4시간 동안 담가 놓았다가 건져 신문을 깔고 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벌레가 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머니에 넣어온 작은 알들은 손녀 몫으로 따로 챙겨놓았습니다. 오물오물 귀엽게 먹는 손녀를 생각하면서 이것도 냉장고 저쪽으로 넣어놓았습니다.
새로운 체험을 해본 즐거운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갔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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