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안산시 원곡동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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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친구 정순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서부지역에 있는 안산시를 다녀왔습니다. 정순이는 제가 중국 청도에서 알게 된 동생과 같은 친구였습니다. 정오 12시가 되어 저는 친구 영순이와 함께 전철과 버스를 타고 정순이가 살고 있는 안산으로 갔습니다. 안산역에 내리니 마침 정순이와 금실이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하보도를 건너 작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정순이는 우리들을 훈춘개장집으로 안내한다고 했습니다.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 들어갔을 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중국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했습니다. 간판마다 중국어가 씌어 있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중국말을 했습니다. 정순이의 말에 의하면 안산시는 외국인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세계 각 지역에서 온 외국인들이 4만 명이나 모여 산다는 안산시 원곡동이라고 소개해주었습니다. 정순이 말을 듣고 보니 그곳에선 대한민국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 사람들이 많았고, 피부색이 우리와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제가 중국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고, 또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열콩을 비롯해 한국 사람들에겐 생소한 중국 남새들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곳곳에 중국 음식점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외국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와 가게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훈춘 단고기 집으로 갔습니다. 단고기 전골에 소주 한 병도 시켰습니다. 단고기 전골은 이곳 한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영양탕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이 흔히 먹는 영양탕에는 쑥갓을 비롯한 들깨 잎과 부추를 넣지만, 훈춘 단고기 집은 북한식과 조리법이 비슷했습니다. 정말 고향 평양에서 맛보았던 단고기국 그 맛이었습니다.

단고기국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 위해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노래방 역시 중국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거의 밤 12시가 됐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택시를 타고 얼마 멀지 않은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순이와 저는 우리도 오늘은 즐거운 외박을 한번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넷은 호텔을 찾았습니다. 한 방에 넷이 모두 들어갔습니다. 저와 영순이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침대를 차지했고, 정순이와 금실이는 우리 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웠습니다. 잠자리가 낯설기도 하고, 또 오랜만에 만나 할 얘기가 많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새벽 4시까지 수다를 떨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그날 밤 우리들은 예전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을 했습니다. 제가 살았던 평양에서는 가정주부인 여성들이 외박을 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이렇게 자유롭게 숙박할 곳조차 없습니다. 여관이나 호텔에는 출장증명서나 무슨 행사에 참가한다는 증명서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고, 통행증 없이는 지방 사람들이 평양에 올라올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평양에 사는 친구가 지방에 사는 친구 집에 가거나 혹은 지방에 사는 친구가 평양에 사는 친구 집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전에는 그나마 편지를 보낼 수 있어서 뜸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친구는커녕 지방에 사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조차 편지를 띄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요즘도 그런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이곳 남한은 여성들이 살기 좋은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박을 한 우리 넷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채소 파는 가게에 들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열콩을 비롯한 중국 남새 몇 가지를 샀습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중국 식당으로 가서 중국 순대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저는 영순이와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외박이라는 것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