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손녀의 첫 돌을 위해 저는 지난 주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아기의 첫 돌 생일에는 한 돈짜리 금반지를 선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저는 금반지를 가지고 아침 일찍 KTX 열차를 타고 부산을 향했습니다. 광명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부산역까지 2시간 30분밖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열차 안에서 손전화기로 지금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든 한창 유행인 애니팡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신나게 애니팡 게임을 하면서도 처음 만나게 될 사돈들에 대한 궁금한 생각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조카의 시어머님은 과연 어떤 분이며 조카사위의 형제분들은 어떤 분들이며 내 조카를 잘 대해 주는 분들인가, 궁금증이 크다 보니 빨리 부산역에 도착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목적지인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조카와 조카사위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왔습니다. 조카사위는 부산 구경을 시켜준다면서 처음으로 부산 태종대로 갔습니다. 저 역시 부산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태종대는 가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태종대는 추석의 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은지라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순서가 되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는 곧장 태종대로 올라갔습니다. 태종대는 멀고 먼 옛날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라고도 불렀고 신라 태종 무열왕 사후의 장소였다는 이야기에 따라 지금은 태종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태종 무열왕은 이곳 해안의 절경에 취해 한동안 머물면서 활쏘기를 즐겼다고도 합니다. 하여 문화재로 등록이 돼있는 태종대는 영도의 남동쪽에 있는 해발 200m 구릉 지역으로, 부산에서 보기 드문 울창한 숲과 기암으로 절벽과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그야말로 웅장한 절경이었습니다.
태종대에서 바라보면 망부석이 있는데 한 여인이 일본에게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리고 넓고 넓은 푸른 바다 위에는 많은 배들이 정착해 있습니다. 바다 수심이 얕아 선착장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도중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넓은 바다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고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습니다.
남해의 푸른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저는 잠깐 조카와 함께 고향을 그려 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남해 바닷가에 서있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조카의 입에서는 정말 꿈이 아닌가 하는 말이 연속 튀어 나왔습니다.
태어난 지 1년이 된 예쁜 공주님을 안고, 그리고 저 멀리 평양에 있는 부모님과 아들이 그립다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상 관계로 간단하게 태종대를 돌아보고는 해운대로 자리를 옮겨 미리 예약해 놓은 뷔페식당으로 갔습니다.
저는 오늘의 주인공인 예쁜 조카 손자 딸애의 작은 손가락에 금반지를 꼭 끼어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밝게 자라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사가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친척들은 너도나도 손전화기를 손에 들고 사진을 연속 찍고 또 찍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도 있었거든요. 한창 정신없이 사진을 찍던 제 눈에서는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이 자리에 언니가 있었으면 얼마나 행복해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난 것입니다. 열차를 타면 불과 2시간이면 오고 갈 수 있는 거리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는 것이 우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조카에게 너무도 잘해주는 사돈들이 마치 조카에게는 친정집에 와 있는 듯한 야릇한 기분에 눈물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사돈들을 보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이 모두 사라자고 한 집안 식구가 된 듯 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부산의 저녁 야경을 구경했습니다. 부산의 야경 또한 너무도 멋졌습니다. 저는 사돈 어머니와 함께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늦은 밤을 보냈습니다.
알고 보니 사돈 어머님 고향은 북한 황해북도 평산이라고 합니다. 황해도 평산은 제가 처녀 시절 군복무로 보낸 곳이었습니다. 사돈은 6. 25 전쟁 때 부모님과 함께 피난하여 내려와 정착한 곳이 부산이라고 합니다. 정말 아들 다섯 형제를 키우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정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은 며느리지만 예쁘게 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내가 김 서방을 보고 그의 품성과 사람됨에 반해 조카를 중매해주었기에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살 거라고 말했더니 너무도 고맙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조카의 맏동서가 마치 친정어머니 심정으로 이것저것 차려 주었는데 내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동차 한가득 선물을 실어 주었습니다. 마치 어디 이민 갔다 오는 사람 같기도 하고 이삿짐 같기도 한 것처럼 굉장했습니다.
서울로 오는 내내 속마음으로 고향에 있는 언니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당신 딸은 비록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천국 같은 세상에 와서 너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절대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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