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무르익은 가을에 떠오른 북에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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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늦더위는 없어지고 선선한 바람과 더불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저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름 없는 무명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정상이었지만 한 눈에 바라보이는 황금빛 벼이삭들이 출렁이는 벌판과 듬성듬성 서있는 고층 아파트들, 그 사이로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을 멀리서 바라보니 마음이 시원하면서도 즐겁고 상쾌했습니다.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변했고 산에 있는 나뭇잎들은 조금씩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했고 그리 크지 않은 들판의 억새도 하얀 색으로 변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빼곡히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높고 파란 가을 하늘에는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고 있습니다. 마치 한 장의 그림과도 같았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나무 밑,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잎위에 모여 앉아 간단하게 들고 간 막걸리 한 잔에 북한 명태를 뜯으며 저 멀리 한창 추수하느라 분주히 돌아가는 기계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북한 같으면 지금 한창 가을걷이 때라 벌판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개인 도급이 사람 잡는다고 실랑이를 하며 허리 펼 새 없이 낫질을 하고 있을 터인데...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친구 수정이는 이곳 대한민국의 들판에는 사람 대신 오직 기계만이 움직이고 있으니 정말 희한하다면서 고향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남들 다 자는 야밤에 논두렁 위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금방 추수해 놓은 볏단을 남편과 아들과 함께 자전거 바퀴에 돌려 벼이삭을 탈곡해 집으로 가져다 절구에 찧어 먹었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리당 위원장이나 관리위원장이 벌떼처럼 야단법석 고아 대고 군당에서 간부들이 나오고 보안원들이 나왔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누가 그랬을까 하면서 오히려 분조 사람들과 함께 걱정하는 척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웃음이 나지만 그때엔 웃음이 아니라 들통이 날 것 같아 마음을 졸이고 아들 입단속을 하느라 겉으로는 대담한 척했지만 남편과 함께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평안남도 양덕군이 고향인 금화는 채 여물지 않은 옥수수를 이삭 채로 분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옥수수가 한창 익어 가는 가을철이라 도적과 강도들이 많아 군인들이 야간이면 총을 메고 지켰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었다고 했습니다. 총을 들고 농장 밭 경비를 서는 군인들 자체가 주민들에게 술과 담배 그리고 돈을 받고 도적질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에서는 한때 정말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당의 방침을 관철해야 한다면서 야간에도 물론 총을 메고 농장 밭을 지켰지만 낮에는 기차역전과 길가에 서서 배낭과 큰 짐을 가지고 다니는 주민들을 단속하고 식량과 남새가 나오면 무조건 회수했고 벌금까지 받았습니다. 원칙대로 하자면 가을에 잘 익은 옥수수를 수확해 어느 정도 말린 다음에 탈곡해 창고에 보관했다가 12월부터 농장원들에게 1년간 일한 공수와 식구 수에 맞게 분배를 하는 것인데 채 익지 않은 옥수수를 밭에서 이삭 채로 분배를 하다 보니 절반도 되지 않아 봄이면 벌써 식량이 떨어져 들판에 돋아나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 먹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시내에서 집단으로 강남의 가을걷이에 동원될 때면 휴식시간 혹은 볏단을 등에 지고 오고 가면서 주머니에 콩알이면 콩알, 벼이삭이면 벼이삭, 낟알이라면 무조건 닥치는 대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주머니 검사를 했고 어렵게 한 알 두 알 모은 이삭들을 모두 회수당한 아쉬움으로 마음이 아팠고 그 일로 당 생활 총화에서까지 비판을 받았던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했고 응당한 것이었기에 어디에다 하소연 한마디 못했다고들 했습니다. 한마디 말없이 묵묵히 우리들의 지난 추억들에 대해 듣고 있던 우리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창옥 언니는 오늘처럼 즐겁고 기분 좋은 날 분위기를 깬다며 가슴 아픈 사연은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막걸리나 마시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크게 웃으면서 오랜만에 이렇게 만났으니 재미있었던 좋은 추억들만 이야기 하자고 했습니다. '원래 여자들이 모이면 영감 흉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영감 흉볼 사람 한 명도 없네.' 하고 창옥 언니가 말해 우리 모두 웃었습니다. 정말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남한에서 흔히 말하는 돌아온 싱글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누구 하나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 좋고 늦게 들어가 밥을 해 달라 밥상 차려 달라고 아이들처럼 조르는 사람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이것이 노년의 행복이고 우리들이야 말로 복이 있는 여자들이라고 누군가 말하자 우리 모두 산이 떠들썩하게 크게 웃었습니다. 이름 없는 무명 산에는 우리들만이 있는 듯 했습니다. 아무리 떠들고 소리쳐도 누구 하나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북한 같으면 웃고 싶어도 마음대로 크게 웃을 수 없고 울고 싶어도 마음대로 크게 울 수도 없으며 이렇게 여자들이 모여 막걸리도 먹을 수 없으며 자유분방하게 산 정상에 올라 자유를 만끽할 수도 없습니다. 항상 누군가에 통제를 받아야 하고 항상 누군가의 감시를 받아야 했고 또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했고 여자들이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아 수다 떨 시간도 없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며칠 전에 강연 도중에 제주도에서 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한 분이 저더러 이곳 대한민국이 천국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북한이 이곳 대한민국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었다면 무엇이냐는 물음에 저는 당당하게 이렇게 답했다고 했습니다.

"이곳 한국처럼 북한에도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눈이 내리는 겨울의 그 웅장한 모습 그리고 북한의 산들에도 가을단풍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저는 한 번도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대해 만끽해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주부로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차가 많지 않아 공기 하나만은 좋은 것 같습니다." 라고 진심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북한의 좋은 점, 이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