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이유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경연대회에서 어린이들이 발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경연대회에서 어린이들이 발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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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아마도 제가 이곳 대한민국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고요? 발레 학원에 다니고 있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7살짜리 손녀가 발레 학원에 입학한지 꼭 1년 만인 지난 토요일 작품 발표회가 있었거든요. 작년 이맘때 제 엄마가 발레 학원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우리 손녀가 같은 또래 애들보다 키가 조금 작거든요. 북한에서 조직생활을 지긋지긋하게 해온 할미로서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손녀를 아끼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지난 주말 손녀의 공연을 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벌써 학원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의 작품 공연이 있다는 초청장과 함께 공연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찍은 화보를 받았습니다. 하여 은근히 그 날을 기다리면서도 절반은 걱정도 됐습니다. 다른 애들보다 키가 작은 제 손녀이기에 혹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해 무대 위에서 머뭇거리지나 않을지 내심 걱정됐던 것입니다.

드디어 공연 당일이 됐습니다. 공연 시간이 촉박해 올수록 제 마음은 괜히 초조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루종일 걱정이 되어 안중 문화회관의 큰 무대 위에서 연습을 하는 손녀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고 또 초조한 마음에 손녀에게 줄 꽃다발을 준비하는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학부모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아차 했습니다. 꽃다발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게 된 낯익은 한 학부모가 꽃 배달 가게 전화번호를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급한 마음에 제가 전화를 하니 20분 안에 배달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장미꽃 50송이로 제일 크고 예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20분이 되자 정확히 꽃가게 사장님이 회관 앞에 꽃을 가지고 왔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꽃다발을 보는 순간 너무도 기쁘고 반가운 나머지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만 사장님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는 다시 회관으로 급히 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금방 공연을 시작한다고 학원 원장님이 인사말을 하는 순간, 그때서야 손녀의 엄마인 큰딸이 숨이 차 헐떡거리며 제 옆에 와 앉았는데 딸의 손에는 알록달록 예쁜 사탕으로 만든 꽃다발이 들려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역시 부모는 부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말이었지만 특근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오는 그 바쁜 시간이었지만 꽃다발 생각을 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과 역시 할미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시간 30분이나 넘게 진행된 공연이었는데 아이들이 준비한 순서가 끝날 때 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왈츠'라는 곡에 맞춰 손녀가 처음으로 등장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귀엽고 예쁜 공주들이 무대로 나왔는데 그만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이라 미처 내 손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더듬어 보다 제 엄마가 알려 주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고 그 순간부터 저는 사진기와 손전화기로 사진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손녀의 몸동작과 엉덩이 돌리는 동작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다음으로 손녀가 등장한 무대는 '춤추는 흰 백조들'이라는 곡이 나올 때였습니다. 무대에 선 아이들은 그야말로 백조 같았습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놀림과 발동작 그리고 몸동작 하나하나가 흰백조가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 같았습니다.

정말 7살짜리 제 손녀가 맞는지 무대 위로 한달음에 달려가 꼭 껴안아 주고 볼을 깨물어 주고 싶었을 정도로 예뻤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원장선생님은 사실 목도 잘 가늠하지 못하는 어린 철부지 꼬마들이었지만 이제는 제법이라고 소개하셨는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원장 선생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요즘 손녀는 유치원과 학원에서 돌아오면 날고 싶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제야 저는 그 작은 마음에도 왜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는지가 이해됐습니다. 흰 백조 옷을 입고 발레 무용을 하는 손녀였기에 그 어린 마음에도 날개를 달고 하늘로 높이 날고 싶어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됐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학부모들이 달려가 자기 자녀들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비록 할미지만 저도 다른 엄마들에 뒤지지 않고 달려가 손녀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고 손녀 친구들과 학부모, 원장 선생님과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손녀는 '꿈이 아니지?'라는 말을 제 엄마와 할미에게 수십 번이나 반복해 말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잘 믿어지지가 않은 듯합니다. 지난 고향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렵게 키우던 학부모 시절,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날아갈 정도로 오늘의 행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