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강서구청 녹색희망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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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흠뻑 느낄 수 있는 10월도 어느덧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해마다 10월이 오면 각 지방마다 다양한 가을축제 행사들이 많이 열립니다. 서울시 각 구청들도 저마다 축제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강서구청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하는 녹색희망축제가 있었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행사 참가자들에게 평양 온반을 봉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 전부터 빈틈없이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10월 23일이 됐습니다. 전날 밤에 저는 강서구에 살고 있는 많은 탈북자들 뿐 만 아니라, 강서구 주민들에게 제 음식 솜씨를 자랑한다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잠은 좀 설쳤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여느 날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사무실에 출근해서 미리 준비해 놓은 닭을 찬물에 담궈 놓았습니다. 핏물을 빼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녁에 씻어 놓았던 쌀을 다시 한번 찬물에 씻고, 물에 3시간 이상 담가 놓았던 닭도 씻어서 차에 싣고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잎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가을 햇살은 그날따라 유난히 아름다웠습니다.

이미 먼저 도착한 다른 단체들은 부침개도 부치고, 갖가지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미리 약속이 돼 있는 공수부대 군인 아저씨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미리 걸어놓은 큰 가마에 닭을 삶았고, 한쪽에서는 전기밥솥에 쌀을 앉혔습니다. 시간이 되어 축제 행사는 시작됐습니다. 탈북 예술인들의 공연을 비롯해 참가자들의 장기자랑 등 한바탕 축제를 보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느라 행사장은 북적거렸습니다.

축제가 한창 무르익고 있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전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전기가 끊어진 것입니다. 저는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점심시간이 돼서 온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왔던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별다른 도리가 없어 체념을 했지만, '우리가 며칠 전부터 어떻게 준비한 행사인데...하는 데까진 해보자.' 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전화도 걸어 보고 했지만,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물과 전기는 문제없이 사용해왔는데, 이런 날 정전이 웬 말인가' 하고 한탄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행사장에서 쓰는 전기 마이크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다시 전기선을 살펴보니 정전이 아니라, 중간에 전기선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끊어진 부분을 다시 연결하자, 밥 가마와 고기 가마는 보란 듯이 다시 끓기 시작했습니다. 바쁜 마음으로 잘 익은 고기를 부지런히 뜯었고, 한쪽에서는 잘 익은 흰쌀밥을 큰 밥사발에 담았습니다.

맨 처음으로 강서구내 형사들과 주최 측 간부들이 찾아와 식사를 마치고는 처음 먹어보는 평양 온반 맛이 별미라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어느 새 우리 음식을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때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준비해온 평양온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또 그 누군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단된 조국이 통일이 되면 저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특히, 내 고향인 평양 주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리라는 다짐을 또다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