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가꾼 배를 수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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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서 꽃이 피고 숲이 우거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벌판에는 탈곡기가 돌아가고 그 뒤로는 누런 벼를 가득 채운 차들이 줄지어 섭니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익고 누렇게 익은 배 수확이 한창입니다. 시장과 마트 과일매장에는 최고급으로 손꼽히는 빨간 사과 누런 배, 귤, 키위, 포도 등 갖가지 과일들이 가득 하네요. 북한 주민들로서는 먹어 볼 수도 없고 보기도 어려운 과일들 입니다. 배 꽃잎이 떨어지고 조그마한 열매가 달렸다고 무척 기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배 수확을 다 했답니다.

저의 농장에도 배나무가 5그루 있습니다. 지난 주말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박스를 챙겨 들고 농장으로 갔습니다. 배 수확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렜습니다. 어느새 수확기를 맞아 봄에 씌어 놓았던 봉지를 하나씩 벗기는 순간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비록 마트에 가득 쌓아 놓은 배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색깔은 너무 예쁘고 노랗습니다. 제 주먹만한 배 한 알을 옷자락에 쓱쓱 문질러 크게 한입을 뗐습니다. 설탕을 입에 넣은 듯 달고 맛있었을 뿐 아니라 살살 녹았습니다. 한 알씩 정성스레 신문지에 쌓아 상자에 차곡차곡 담고 있던 큰딸이 한 마디 합니다. 고향에서 먹던 배 맛이라고 합니다. 크기도 그렇고 맛도 고향에서 먹어 보던 맛이라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북한에서도 8,9월에는 평양시 학생들에게 배를 1인당 5kg씩 공급해 주었거든요. 그나마도 떨어지면 공급이 중단 되었습니다. 과일상점에 배를 실은 차가 도착 하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합니다. 인민반 꾸리기 사업으로 조금 바쁘다는 핑계로 저는 10살 되던 큰딸을 과일상점 앞에 줄을 세워 놓았거든요. 에어컨도 없는 자그마한 과일 상점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득 차 있다 보면 더위에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큰 딸애가 서 있던 바로 앞자리에 섰던 한 아주머니가 쓰러졌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큰 딸애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달려와 친구의 엄마가 쓰러졌다고 울며 말합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과일 상점으로 달려 가보니 큰딸과 한 학급에 있는 친구의 어머니였습니다. 상점 사무실에 눕혀 놓고 찬물찜질을 해주었습니다. 30분후에 그 자리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그 아픈 몸에도 배 5kg을 공급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합니다.

그 후로 과일 상점이든 식료상점이든 배급소이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아무리 엄마가 바쁘다고 해도 큰딸은 대신 가려고 하지 않아 꾸지람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식구 중 3명이 학생이다 보니 한번에 15kg을 공급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잘 익지 않은 배라 그냥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잘 익지 않은 배로 냉국을 만들어 저녁 밥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워낙 쉽게 먹기 힘든 오이 냉국인줄 알고 밥상에 앉았는데 배 냉국이었거든요. 남편이 하는 말 비록 처음 먹어 보는 배 냉국이었지만 참말 시원하고 맛있었다고 꽤 먹을만했다고 했습니다.

씻은 배에 사카린을 넣고 밤새 끓여 다음날 동네 아이들에게도 함께 나누어 먹였습니다. 비록 잘 익지 않아 먹을 수 없었지만 사카린을 넣은 탓에 꽤 먹을만했습니다. 내 고향 북한에서는 해 마다 과일 풍년이 들었다고 자랑을 해도 그저 뻔한 선전이다 보니 나라의 왕이라고 하는 어린이들도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기에 탈북자들이 이곳 한국에 와서 마트나 시장에 가면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갖가지 과일을 보고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처음 보는 바나나와 귤을 껍질째로 먹어 웃음거리가 된 경험도 있습니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수확한 배를 내 고향 주민들에게도 보내주고 싶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