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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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월의 해도 저물어 갑니다. 예쁜 꽃들이 피고 새싹이 파릇하게 돋아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네요. 오색단풍도 절정에 이르러 온 강산과 들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제일 아름다운 계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공원의자에 앉아 손녀의 인라인 스케이트, 북한식으로는 최신식 로라 스케트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그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는 와중에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때늦은 장미꽃 한 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장미가 제 계절을 잊은 듯합니다만 비록 조금 색이 바란 장미꽃이었지만 대견한 마음과 함께 왠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생각이 들어 제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저 역시 가을을 타는 여자인가 봅니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인라인 스케이트를 열심히 타던 손녀가 달려와 작은 고사리 손으로 제 어깨를 조물조물 만져주며 할머니의 얼굴에 힘이 없어 보인다고 수선을 떨기도 합니다. 그날 저녁 손녀는 회사에서 돌아온 제 엄마에게 힘이 없는 할머니를 위해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자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제법 이제는 이 할미의 마음을 잘 읽어 때론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벌써 손녀의 위안을 받을 나이가 됐는가 하는 생각으로 또 한 번 마음이 짠했습니다. 하여 마침 주말이라 손녀와 함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에 다녀왔습니다. 딸의 잘 아는 언니가 수덕사를 다녀왔는데 갖가지 산채 음식점이 있어 좋은 곳이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세 여자가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가는 길이 낯이 익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이었는데 예산은 사과 고장이라 그런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과수원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잎은 다 떨어져 없고 빨간 사과만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더욱 멋있어 보였고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사과 과수원을 지날 때마다 손녀는 사과를 따가자고 졸라대기도 했습니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 손녀와 승강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것도 몰랐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역시 제 예측대로 수덕사는 낯이 익은 곳이었습니다.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한 그루의 감나무를 보는 순간 지나간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언제인가 복지관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수덕사에 왔었는데 그때 그 감나무에 달린 감을 따 먹었거든요.

또 수덕사를 돌아보고는 더덕 산채 한정식을 먹고 온천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낯익은 감나무에는 올해도 역시 지난해처럼 누런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수덕사로 올라가는 길은 꽉 막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등산객들도 있었고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함께 절을 찾는 이들도 있었고 때마침 수덕사 미술관 앞에서는 어느 스님이 쓴 책의 출판기념회 행사도 있었습니다.

갖가지 색깔의 한복을 차려 입은 예쁜 여성들이 길거리에 서서 따끈한 국화차 한잔씩 오고가는 손님들에게 대접했습니다. 저는 국화차 한잔을 받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얼른 한 모금 마셨습니다. 한잔의 따끈한 국화차 맛과 소나무의 향기가 어울려 온 몸이 녹아 내렸습니다. 의미 있는 한잔의 국화차를 마시며 수덕사를 돌아보면서 손녀와 함께 많은 사진도 찍었고 절에 들어가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동전을 붙이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고 하는 크고 넓은 바위 위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동전을 붙이고는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저도 손녀와 함께 동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경험이 있는 저는 단 한 번에 동전을 붙였지만 손녀는 수십 번 만에야 겨우 동전 한 개를 붙일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가르쳐 준대로 고사리 같은 작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두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손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절에서 내려와 우리는 '산채 한정식' 집에 들어가 더덕구이 한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먹는 점심식사는 별미였습니다. 저는 더덕을 구입하기도 했고 아이들처럼 긴 엿도 구입해 먹으면서 지나간 세월, 어린 시절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의 흰 고무신을 몰래 치마 자락에 감추어 가지고 엿가락을 바꾸어 먹고 부모님에게 된 꾸지람을 받았던 지나간 추억도 해보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 사람구경도 하고 많은 가게들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쓸쓸했던 마음도 개운해졌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과수원에서 직접 재배한 사과도 한 상자 구입했습니다. 오전에 가는 도로는 한산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도로가 꽉 막히기도 했습니다. 서해대교가 너무 막힌 탓으로 우리는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바다를 가로 질러 둑을 쌓아 만든 도로로 오면서 다시 한 번 우리 한국의 도로 건설 발전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구입해 온 더덕을 짓찧어 고추장에 담그고 또 구입해 온 사과를 한 알 한 알 신문지에 꽁꽁 감싸서 김치 냉장고에 넣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 한 알 실컷 먹이지 못했던 고향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기억도 잠깐, 지난 주말은 귀여운 손녀 덕분에 수덕사를 다녀와서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확 날렸고 좋은 추억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