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가로수들에서는 끊임없이 낙엽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괜히 쓸쓸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꿈속에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저를 바라보시며 빙긋이 웃고만 계셨습니다.
저는 1년 한 두 번 씩 드문히 꿈속에서 부모님을 봅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어제 밤에도 아버지는 제 꿈에 우리 집을 찾아오셔서 행복한 저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웃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꿈속에서나마 부모님을 보게 되는 날이면 그 다음 날엔 좋은 일이 생기고, 잘 풀리지 않던 일들도 잘 해결되곤 합니다. 아버지 꿈을 꾼 다음날 아침 기분 좋게 출근을 하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부모님에 대한 좋은 추억을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저는 그 날이 바로 10월 25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아버지 생신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꿈속에서 생신 축하한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던 저는 아버지 생신날을 모르고 있었던 불효자식이 된 것 같았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저는 머나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1996년 2월, 76세의 삶을 마감하시며 마지막으로 저에게 한마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처음 제가 나서 자란 고향이요, 부모님 묘가 있는 정든 고향인 평양을 떠나 국경지역으로 갔다가 자식이 중국으로 탈북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무조건 자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증과 시민증을 가슴에 품은 채 두만강 물에 뛰어들면서 저는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중국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강제 북송되는 과정에서 제가 살아야 할 조국은 오직 이곳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기에 저는 잃어버렸던 자식도, 버려졌던 자식도, 그리고 강제로 빼앗겼던 자식도 모두 찾아 함께 이곳 대한민국으로 왔고, 입국한 날부터 저는 진정한 나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부모님을 뵐 때마다 저는 부모님이 하늘에서도 항상 저와 제 가족을 지켜주고 있기에 늦게나마 이렇게 남한에 와서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며칠 전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 저는 얼마 전에 꿈속에서 뵈었던 아버지 생각에 쓸쓸한 마음이 들어 사무실에 있는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자주 부르시던 노래 '타박네'를 불렀습니다. 오래전 부모님은 이곳 남한 노래를 중국 연변노래로 알고 자주 불렀습니다. 한번은 제가 겨울 방학을 한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 집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부모님이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셨는데 그 노래가 바로 타박네였고, 저 역시 그때 배우게 됐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부모님이 불러 귀에 익은 이 노래는 한국에 와서 맨 처음 듣고,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타박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함경도 어느 시골에 무당이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아이들은 이 아이를 무당 딸이라고 놀리고 따돌렸다고 합니다. 딸은 어머니를 원망하며 삐뚤어져만 갔고, 그런 딸의 모습에 실망한 무당 어머니는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답니다. 어머니는 죽었지만, 무당의 딸은 나이가 들어 이웃마을로 시집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시집 식구들에게 귀여움도 받고, 나름대로 행복한 신혼생활도 꾸려 나갔지만, 날이 갈수록 시집 식구들은 며느리를 못 마땅해 했고 조금만 잘못한 일이 있어도 무당 딸이라며 업신여기고 타박을 하였답니다. 견디다 못해 딸은 정신병이 들었고, 병이 들자 시집에서는 쫓아내 버렸습니다. 오갈 데 없는 딸은 고향으로 미쳐서 돌아왔고, 그런 무당 딸을 마을 사람들은 시집에서 타박만 받다가 쫓겨난 여인이라는 뜻으로 타박네라 불렀다 합니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디메 울고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 못 간단다. 물이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줄랴? 명태 싫다 가지 줄랴?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가사만 들어도 가슴이 아픈 이 노래를 왜 우리 부모님은 자주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삶에 찌들고 지쳐 푸념하듯 그런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