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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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가족과 함께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시 구로구 개봉역 주변에 있는 소문난 한정식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쉬는 날이라 서울로 가는 도로는 조금 막히기도 했습니다. 12시 30분에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출발하기 전 자녀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까지 간다면서 서로 말들이 많았는데 도로까지 막히다 보니 더더욱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손자들 때문에 잠깐 휴게소에 들려 쉬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며느리에게 음식점에 전화해서 1시로 예약을 늦춰달라고 부탁 전화를 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음식점 사장님은 괜찮다고 하면서 친절히 반겨주었습니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을 보고 출발 전 먼 길, 막힌 도로로 오며 섞여 있던 짜증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가족들은 보통 한정식 음식과는 전혀 다른 별맛인 것 같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저는 이런 맛에 이곳으로 찾아온다고 말하면서 한국의 문화대로 우리도 맛있는 음식을 찾아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여행 겸 떠나는 게 추억이고 보람이 아니겠냐고 말했습니다.

이런 제 삶도 이제는 한국식이 다 됐고 한국 사람들의 문화에 다 접한 듯 합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가족은 소화도 시킬 겸 찻집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 한잔씩 마시면서 서로 한 주간에 있었던 재미있고 즐거웠던 가족생활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했었습니다.

아들과 사위는 서로 회사 상사들의 얘기를 시작했고 저는 손자들과 그동안 즐겁고 재밌었던 얘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고 작은 딸은 두 아이와 함께 바쁜 시간을 보냈던 얘기로, 또 며느리는 대학시험으로 인해 밤낮 도서관에서 날을 밝히던 얘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은 저에게 그동안 바쁜 며느리 대신 반찬을 챙겨주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후에 대학 졸업하면 꼭 보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족을 보며 저는 비록 북한에서 부족한 것이 많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다시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었는데 옆으로 갑자기 멋진 오토바이 두 대가 속도를 내며 달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모두 경찰들이었는데 규정을 위반한 차를 단속하기 위해 앞서 갔던 것입니다. 제가 놀라 뚫어지게 쳐다보자 아들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들의 얘기를 들으며 저는 내 고향 북한에서의 생활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비록 북한에도 시내 도로에서 안전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단속도 합니다만 그보다도 10호 초소가 떠올랐습니다. 10호 초소는 평양 시내 주변과 국경 연선 주변에 만들어 놓고 주민들과 차들을 단속하고 검거하는 초소인데 주민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초소 중의 하나거든요.

왜냐하면 사람이나 차들이 통행증이 없으면 빠져 나오기 힘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평양시 주변에는 이런 초소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 형제산 구역 간리와 순안초소가 있고 력포구역과 사동구역, 만경대 구역, 룡성구역을 비롯한 평양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지정돼 있습니다.

이 10호 초소는 기본적으로 차량과 사람들을 단속 검거합니다. 지방 사람들이 평양시내에 함부로 진입할 수 없게 단속하는 초소라 보면 제일 쉬운데요. 저도 10호 초소에 좋지 않은 기억들이 많습니다. 한 번은 간리 역 주변에 있는 친척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친척이 살고 있는 동네는 전력 공업부아파트였는데 조금 묘하게 돼 있는 거리였거든요.

기차역에서 내려 10호 초소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였는데, 저는 엄연히 평양 시민이었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10호 초소로 주변을 지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옆구리에 권총을 착용한 군인이 저를 세웠습니다. 요구에 따라 평양시민증을 보였는데 얼굴 모습이 조금 다르다며 트집을 걸어 2시간이나 잡혀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탈북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었다가 청진 집결소에서 탈출해 함북도 무산으로 가던 도중 철산주변 10호 초소를 통과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썼던 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중국에서 생활하며 항상 경찰차나 경찰들이 탄 오토바이를 보면 가슴 조이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 하며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린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며 그 때 그 아픔을 행복으로 덮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