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이맘때 쯤, 떨어지는 가랑잎을 보면 쓸쓸한 마음을 달래느라 어디론가 한 번쯤 떠나 보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 역시 갑작스런 며느리의 제안에 계획에도 없었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천진난만한 손자 녀석들은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을 가리켜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다고 좋아 합니다만 왠지 제 마음에는 걷잡을 수 없이 쓸쓸함이 밀려오네요.
이런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마침 눈치 빠른 며느리가 시간도 있는데 가을 여행이 어떠냐고 제안해 옵니다. 마침 강원도 간성에 있는 군부대에서 강의가 예약되어 있고 저에게는 그다지 무리한 제안은 아니라서 오케이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1박 2일간의 여행 준비와 강의 준비를 마치고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할미의 그림자와 같은 손녀도 함께 말입니다. 마침 평일이라 고속도로는 비교적 조용합니다만 역시 단풍 구경으로 많은 차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분주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보면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는 서울을 벗어나서부터는 산으로 시작해서 산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로 양옆으로 뻗어있는 산맥들에는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의 단풍이 물들어 있어 산세와 절경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손녀딸애도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황홀해 합니다만 저 역시 손녀딸 못지않게 설레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한창 진부령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데 그냥 가기엔 너무도 아쉬운 생각이 들어 우리는 진부령 정상에 차를 세웠습니다. 차에서 내려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황홀한 풍경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순간 저는 저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삶은 닭다리를 뜯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 역시 흘러가는 계곡에 내려가 맑은 물 한 모금 마시고 싶다고 합니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헤엄치는 산천어가 보이는 듯합니다. 높고 높은 산세와 절경이 빨간색 노란색으로 물든 단풍과 어울려 황홀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계곡 물이 어울려 금강산이 왔다 울고 갈 정도였습니다. 노래에도 있듯이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았습니다.
강의 시간으로 인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차에 올라 달렸습니다. 진부령 고개를 내려와 인차 간성 터미널에 도착한 저는 잠깐 손녀, 며느리와 이별해 혼자 군부대로 들어갔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오후 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가족들과 만나 속초를 향해 달렸습니다. 속초도 3년 전보다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아바이 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힘 있고 의미 있는 글이 있었습니다. '삶. 그리움. 흔적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아바이 마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함경도 실향민들의 슬픈 마음의 사연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마침 제 며느리 고향이 함북도라 이번 늦가을 여행의 의미가 더 크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또 속초 아바이 마을 하면 두고 온 고향의 순대와 오징어순대가 생각이 나거든요. 우리는 옛날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조건 순대국과 오징어순대를 시켰습니다. 음식이 들어오기 전부터 며느리는 입맛을 다시기도 합니다. 오징어순대를 보는 순간 손녀는 맛있겠다고 손뼉을 칩니다. 한참을 고향 생각이 나서 저는 수저를 들지 못했습니다만 아무 것도 모르는 손녀는 오징어순대 한 개를 한입에 넣어 씹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보입니다.
사실 제 입에는 맛이 별로였습니다. 오리지널 북한 순대, 오징어순대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과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음식도 조금은 짬뽕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고향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조금 늦은 점심이었지만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하늘도 쓸쓸한 제 마음을 알아주듯이 가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회사 일로 함께 오지 못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가자미 식혜와 명란젓을 구입했습니다. 식당을 나오면 바로 바다입니다. 손녀는 동해 바다 구경하자고 졸라 댑니다. 가을 빗방울이 떨어진 뒤라 바닷바람이 조금 세차게 불었습니다. 강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자 조금은 시리기도 합니다.
잠자리는 시가지로 나와 호텔을 잡았습니다. 키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손녀는 옷도 바꿔 입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는 어느 만화 영화 제목을 말하며 자기가 마치 공주 같다고 합니다. 구입한 오징어순대를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우리는 약간 흐린 날씨였지만 속초하면 물회가 아닌가 하여 물횟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늦은 아침 겸 점심 겸 시원한 물회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이번에는 미시령 고개로 차를 달렸습니다. 늦은 가을비가 촉촉이 내립니다. 미시령 고갯길에 올라서니 마치 설악산 정상에는 선녀들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묘한 구름과 안개가 가득 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가을 하늘과 설악산 절경이 어울려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한눈에 안겨 옵니다. 온가족들이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도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 겹친 피로와 감기로 인해 망가졌던 제 마음의 상처와 육체의 상처가 이번 가을 여행을 통해 많이 치유되었습니다. 역시 인간의 생명을 책임진 간호사인 며느리의 갸륵한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늦은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내리는 약비라 빗소리 또한 싫지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함께 오징어순대와 가자미 식혜를 먹으며 북한 같으면 경험도 해 볼 수 없는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획에도 없었던 이번 즉흥 여행은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한 가을여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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