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재입북 탈북자 기자회견을 보며

남한에서 생활하다 북한으로 귀환한 탈북자 김광혁-고정남 부부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국내외 기자들과 회견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남한에서 생활하다 북한으로 귀환한 탈북자 김광혁-고정남 부부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국내외 기자들과 회견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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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느리게 돌지만 쉼 없이 부지런히 도는 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맘때가 되면 쓸쓸한 마음은 해마다 그러하듯이 어쩔 수가 없네요. 며칠 전에 저는 퇴근길에 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추듯이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며 나 자신도 모르게 잠깐 길가에 멈추어 섰습니다.

나란히 함께 걷던 친구도 저와 꼭 같은 마음이었는지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문득 친구는 바람에 날려 발등에 떨어지는 은행잎을 한참 내려다보며 우리 인생도 은행잎과 별다른 것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쓸쓸하다고 했습니다.

외로운 두 아줌마의 쓸쓸한 마음을 알아주듯이 금방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비도 피할 겸 빵과 음료를 파는 카페로 들어가 간단하게 햄버거와 음료수를 시켰습니다. 고향이 함북도인 친구는 현재 딸과 함께 살고 있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나름대로 마음의 상처들이 있지만 언제나 밝고 행복해 보이는 그 친구의 마음에도 말 못할 가슴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남편과 군 생활을 하던 아들 생각으로 항상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는다는 친구입니다. 그래 그 친구는 자식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저를 친언니처럼 생각하면서 부러워만 했습니다. 여러 번 고향에 소식을 보냈지만 날아오는 소식은 살고 있던 곳에 가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나간 세월을 탓하기도 했고,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이곳까지 어렵게 올 수 있었던 지금은 먼 과거처럼 지나버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친구로부터 한통의 손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 친구는 뉴스를 보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내용인즉 대구에서 살고 있던 젊은 부부가 9월에 북한으로 끌려가 기자회견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부부와 대구에서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전화를 끊고 친구와 저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스마트 손전화기를 들고 인터넷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그리고는 통일 방송에 들어가 직접 그들 부부가 북한에서 기자회견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북한 당국이 최근에 탈북자들을 납치하여 강제 북송해 말도 안 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행복한 새 삶을 살고 있는 탈북자들과 대한민국 정부, 국민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김광혁과 고정남 부부는 이제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사람들입니다.

고정남이 역시 어린 나이에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몇 년 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국적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땅에서 숨어 살다가 자유를 찾아 이곳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북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한 삶과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습니다. 북한에서도 아주 시골이 고향인 그가 이곳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북한에 있었다면 대학은커녕 중학교도 졸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 너무도 뻔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곳 대한민국에 왔었기에 간호 대학도 졸업할 수 있었고 또 궁전 같은 고급 아파트에서 근심걱정 없이 인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북한 기자회견 장소에는 체격에 맞지 않는 빨간 비로도 한복을 입고 구석에 오금을 펴지 못하고 쭈그린 채 앉아 있는 초췌한 그들의 부모를 보았습니다.

친구와 저는 치를 떨었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강제적으로 오라고 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고 넘으며 어렵고 힘들게 찾아 왔습니다. 한국정부와 국민들은 우리들에게 고급 아파트도 주었고 정착할 수 있는 정착금도 주고 생계비도 주고 많은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도록 진심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임금으로 시장에서 쌀 1kg도 구입할 수 없지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일한 임금으로 쌀 20kg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한 달 임금으로 구입한 쌀로 한 끼의 죽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지만 이곳 한국에서는 하루 일한 임금으로 구입한 20키로 그람의 쌀은 우리 5인 가족이 석 달은 먹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차이입니다. 또 하나, 북한에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당국에서 공급해주지 않으면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남한과 북한의 현실적 차이입니다.

하기에 우리 탈북자들은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도, 회장도 되었고, 심지어 국가 법률과 재정에 관여하는 국회의원도 되었고, 교수, 박사로 고급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이곳 대한민국에서 태를 묻고 자라난 국민들 못지않게 당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 부부는 북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아남기 위해 북한 당국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곳 대한민국의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하는 젊은 그들 인생이 참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