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을 다녀와서

지난달 26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7회 현충원 길 걷기대회'에 참여한 시민이 단풍을 감상하며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7회 현충원 길 걷기대회'에 참여한 시민이 단풍을 감상하며 길을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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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들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을 다녀왔습니다. 현충원은 국가나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는 묘지를 말합니다. 일행을 만나기 위해 새벽 일찍 저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도착할 거라 생각했지만 벌써 많은 친구들이 와있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재빠르게 버스에 올랐습니다.

장거리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는 체질이라 맨 앞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벌써 앞좌석은 그 누군가 차지했기에 저는 두 번째 좌석에 앉아 자리를 풀었습니다.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생밤도 까먹었고 귤도 한 알 먹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버스가 출발하자, 대열 책임자는 천안 독립관을 관광하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46명의 천안함 용사들을 찾아간다고 말했습니다.

두 곳 다 저에게는 해마다 한 번씩은 가는 곳이라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다보니 버스는 금세 첫 목적지인 천안 독립관에 도착했습니다. 평일이었지만 독립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학생들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있었습니다.

독립기념관 주변은 오색 단풍으로 그야말로 아름다웠습니다. 큰 연못에는 비록 조금 징그럽긴 했지만 예쁘고 큰 물고기들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여 용감하게 싸웠던 독립군과 광복군의 저항운동을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험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갔습니다. 누구보다도 조국의 푸른 바다를 사랑했던 천안함 용사들, 우리는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친 천안함 46명의 용사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대전 현충원은 제일 공기 좋은 곳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산이 울타리 모양으로 둘러져 있는 곳이다 보니 사방팔방 절정에 오른 오색 단풍으로 한 장의 그림 같았습니다. 우리는 준비해간 흰 장갑에 깨끗한 천을 손에 들고 비석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짠했습니다.

지난 3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북한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되던 그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새삼 떠올랐습니다. 전쟁도 아닌 평화 시기에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피격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손자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 또는 내 아빠가, 사랑하는 내 남편이 조금 전까지도 전화로 서로 사랑한다고, 잘 자라고 인사말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갑자기 차디찬 찬 물속에 잠긴 채 실종되거나 숨졌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켜가는 늠름한 조국의 소중한 아들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한 사람, 한 사람 사진에 담겨져 있는 모습을 쓰다듬기도 하고 또박또박 적혀 있는 이름 석 자를 만져보기도 하고 비석을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특히 19살 어린 꽃나이 생을 마감한 고 장철희 일병의 묘역 앞에서 저는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캄캄한 밤 차디찬 찬 물속에서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니 짠한 마음과 동시에 눈물이 났습니다. 불의의 사고도 아니고 북한에 의해 죄 없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그리고 한때는 나 자신도 북한에서 군 복무를 했다는 것이 죄스러운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함께 갔던 친구들의 마음 역시 저와 꼭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한에서 군복무를 했었고, 이곳 한국에 온 지 2년 된 한 친구는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마음 아파했습니다.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에 새 둥지를 튼 우리들에게는 해마다 찾아가는 천안 독립관과 국립대전현충원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참관의 의미가 무거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