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구들이 찾아 왔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들깨털이를 함께 하기로 했거든요.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들깨털이를 함께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 친구가 도리깨질을 하면 다른 친구는 자그마한 장대기를 들고 털었습니다. 통통하게 잘 여문 들깨 알이 후드득 덜어 지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너스레를 떨며 좋아합니다.
아직 채 걷어 들이지 않은 줄당콩을 보며 함북도가 고향인 한 친구는 얘기합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배고픔을 달래다 못해 5살짜리 어린 딸과 함께 옆 마을로 갔다고 합니다. 울바자에 줄당콩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거다!' 하는 생각으로 왠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났다고 하네요.
천진난만한 어린 딸에게 망을 보라고 하고는 부지런히 남의 줄당콩을 따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줄당콩을 따서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갑자기 어린 딸의 울음 소리가 났다고 하네요. 울지 말라고 하는데 어린 딸애는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답니다. 딸애를 돌아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기보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온몸이 굳어져버렸다고 하네요.
마치 남의 것을 제 것처럼 시퍼런 대 낮에 아무 경계심 없이 도둑질하는 너무도 뻔뻔스러운 모습에 주인 자신도 놀란 나머지 딸애의 손목을 잡고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줄당콩 주인은 다름 아닌 남편의 아주 가까운 친구였는데 그 아내분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로 등 뒤에 딱 서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에 주인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더욱 놀랐다고 합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주인이 금방 삶은 옥수수 3이삭을 더해 주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배가 고플지라도 남의 것을 탐내고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걸 그 때부터는 항상 애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얼마 뒤 친구는 작은 두 딸에게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말을 남겨 두고 집을 떠나 두만강을 넘어 탈북하게 되었고 중국에서 여기저기로 인신매매꾼들에게 끌려 다니다 보니 다시는 사랑하는 두 딸의 품으로 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10년 전에 이곳 한국에 온 친구는 딸 한 명을 데려 왔습니다. 그때의 5살짜리 딸애가 20살 성인이 되어 드디어 엄마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어느덧 들깨를 다 털고 우리는 울바자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줄당콩을 땄습니다. 그때 고향에서 줄당콩을 보고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조금 이른 저녁 식사이지만 자주 다니는 단골집인 반구정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빠가사리 매운탕에 돌솥밥을 시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전철을 타고 가겠다는 우기는 친구들을 자가용 승용차로 집까지 모시고 가양대교를 넘어 강서구로 향했습니다.
두 친구를 집까지 모셔다 주고 집으로 오는 내내 저는 달리는 차창 문으로 밖을 내다 보며 지나온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낯선 이곳 한국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친구들과 맛있는 밥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영화 구경도 하고 때론 친구들과 등산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어렵고 힘들었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때로는 찜질방과 온천에서 서로 등을 밀어 주면서 자녀들과 하지 못하는 얘기로 밤을 새우며 수다를 떨었던 친구들입니다.
이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어렵고 힘들었던 고비를 넘기며 새로운 남한 땅에서 적응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함께 해 봅니다. 오늘은 새로운 내 집 텃밭에다 내가 직접 심고 가꾼 들깨를 먼 옛날 방식대로 도리개질도 해 보고 들판에서 따끈따끈한 라면도 끓여 먹으니 별맛이기도 하지만 지난 세월 아팠던 가슴의 쓰라림을 라면 국물과 더불어 조금은 씻어 버린 것 같네요.
지난 주말은 친구들이 있어 더더욱 즐거움과 행복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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