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저는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해마다 건강보험 공단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통보가 자주 왔지만 특별히 아픈데도 없는데다 무료라는 말이 잘 믿기지 않아 그냥 잊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손전화기 문자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건강 검진 내용에 대해 상세히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문자가 하도 오기에 사위에게 보이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위가 문자를 보더니 국가의 의료보험에 가입하면 건강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특별히 아프지도 않은데 무슨 건강 검진을 받느냐고 했더니 큰딸은 대한민국 생활 9년이 됐는데도 왜 그렇게 모르는 것이 많냐면서 제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저는 회사 근처에 있는 강서구 건강검진 센터에 찾아가 예약을 하고 다음날 다시 건강검진 센터를 찾았습니다. 친절한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우선 접수를 마치고는 가슴 흉부 촬영부터 시작해 피 검사와 여러 가지 암 검사를 받았습니다.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건강 검진 센터에서 회사까지는 15분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간 김에 저는 독감 예방 접종까지 하고 돌아왔습니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잠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살았던 북한에서는 나이 50이 되어도 예방 접종을 해주지 않습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먼저 예방 주사를 접종해야 하는데 그나마 예방 접종약이 너무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들은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감기는 물론 파라티푸스, 발진티푸스, 간염, 결핵 등 수많은 전염병에 걸려도 약 한 첩 써보지 못하고, 주사 한 대 제대로 맞아 보지 못하고 오랜 시간 고통을 호소하다가 숨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병원들에는 약이 없어 진단만 받고 장마당에서 값비싼 가격으로 항생제를 비롯한 각종 중국산 감기약을 많이 구입해 사용했습니다.
봄과 가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병원을 찾은 남편은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추운 겨울마다 교도대 훈련 때문에 천막생활을 하던 남편은 그만 밥 먹은 것이 체해 위병을 앓고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특별한 처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마당에서 소다를 구입해 1년 12달 식사 후에 빠짐없이 먹곤 했습니다.
1년 12달 소다를 복용했더니 몇 년이 지나 그만 위벽이 얇아 구멍이 났고 염증까지 더했습니다. 그래도 병원 입원 치료는커녕 항생제 한 번 맞아 보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췌장염에 걸렸을 때에도 저는 병원에서 진단만 받았을 뿐 장마당에서 항생제 주사인 페니실린과 마이신을 구입해 사용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폐렴과 기관지염에 걸려도, 그리고 독감에 걸려도 저는 항상 민간요법으로 자체 치료를 했습니다. 기관지염으로 앓고 있는 아기 잔등에 귀를 대고는 밭갈이하는 소리가 나는 쪽에 부항을 뜨거나 꿀을 구입해 손바닥만 한 흰 종이에 꿀을 발라 앞가슴과 잔등에 붙여 주곤 했고 기침에는 부항과 함께 파뿌리와 무를 달인 물, 그리고 배 즙과 오미자 달인 물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여름 장마철에 아기들이 설사병에 걸리면 항상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던 아편대를 달여 먹이곤 했습니다. 이제 두 살도 채 안된 어린 아기에게 아편 달인 물을 먹였다가 그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정신없이 아기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 간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의 잔등에는 부항 불에 덴 흔적이 여러 곳에 있답니다.
벌레 먹은 치아의 아픔을 호소하느라 잠을 못자는 아이들에게 신문지 태운 연기를 쏘이게 했고 놋요강에 눈 오줌을 끓여 입에 물게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미개한 짓들이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주사약 한 대 맞고 싶어도 맞을 수가 없고 감기에 걸려도 감기약 한 알을 병원에서 구입해 먹을 수 없었습니다.
무상 치료제라고 하고 있지만 돈이 없으면 약 한 첩 써보지 못하고 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의 현실입니다. 저의 조카는 북한군에 있다 혈관을 따라다니는 기생충병에 걸려 치료차 집에 와 있었지만 병원에 약이 없어 시장에서 구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핵과 간염뿐 아니라 각종 전염병에 걸려 오랜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과 굶주림, 추위에 떨다가 얼어 죽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북한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을 줄이기 위해 미리 아편 덩어리를 구입해 놓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을 직접 들을 때마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좋은 약품을 택배로 부쳐줄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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