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곤지암리조트에서 들은 탈북한 친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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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통일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공동연수 프로그램이 있어 곤지암 리조트에 다녀왔습니다. 곤지암 리조트는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키장입니다. 조금 이른 시기라 아직 스키장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마침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둥근 식탁에는 이미 알고 지내던 낯익은 친구도 있었고, 처음 보는 친구도, 그리고 이곳 남한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윗동네 친구, 아랫동네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고 우스갯소리와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차 교육에 들어갔습니다. 오후 교육을 마치고 저녁 만찬회가 있었습니다. 만찬회를 마치고 우리는 각기 배정된 호텔 방으로 갔습니다. 저와 함께 방에 묵기로 예약된 친구들은 그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연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아랫동네 친구 한 사람과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 밤을 보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마침 제가 들게 된 방에는 맥주와 음료수 그리고 간단한 안주까지 있었습니다.

우리 셋은 옆방 친구들과 합류하기로 하고 모든 음식을 들고 옆방으로 갔습니다.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남과 북 친구들이 서로 자기가 살아온 인생역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아 다들 왕언니라 불렀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한민국에서 무척 강한 엄마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식을 키우던 일부터 자식 자랑, 지난해 강의 경험과 앞으로 해야 할 이야기 등 서로 이야기를 하느라 날이 밝는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작년에 대한민국에 온 한 탈북 친구의 북한에서의 인생담과 중국에서의 인생 경험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그는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회령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남편과 시부모님, 자식들은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아기를 출산하고 집도 없이 밖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아기를 안고 내리는 비를 하루 종일 맞아야 하고 땅이 젖어 잠자리가 없어 24시간 꼬박 아기를 안고 그 비바람을 맞아야 했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비닐 방막 조각을 얻어 온몸을 감고 잠을 자야 했고 배고픔과 추위보다도 견디기 힘든 건 나오지 않는 말라 버린 빈 젖꼭지를 물고 사정없이 울다 지쳐 쓰러진 아기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아기를 내려다보며 정신을 잃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지 50일도 안 되는 아기는 숨졌고, 숨진 아기를 품에 안아 들판으로, 산으로 기어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고 심지어는 흙도 먹었다고 합니다.

굶주림에 길가에 쓰러져 있는데도 누구 하나 발길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이 없었고 맹물 한 술로 입술을 적셔 주는 이 하나 없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군인의 다리를 붙잡고 제발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도 해 보았다고 하는데 자식을 키운 엄마의 심정으로 또는 같은 여자의 심정으로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아이를 길거리에서 잃었고 끝내 낯모를 사람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에 성공해 팔 하나 없는 장애를 가진 한족에게 팔려가 그야말로 식구 10명이 되는 대가족의 식모살이를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국적 없고 호구가 없는 탓에 숨어 살던 와중에 북한으로 두 번이나 강제 송환되어 짐승보다도 못한 수모와 모욕,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아기를 출산해 산후 조리를 잘하지 못한 탓에 그는 지금도 한 팔을 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에서 살아온 저로서 또 중국공안을 피해 숨어 살면서 북한으로 강제 북송됐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그의 말이 남의 말 같지가 않았습니다. 지나간 세월 가슴 아팠던 추억이 새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함께 있던 친구들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이곳 한국에 온지 이제 겨우 1년이 조금 지났지만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에서는 여성들은 나라의 꽃이라고 또 어린이들은 세상에서 부럼 없는 나라의 왕이라고 대내외에 많은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성들이 아기를 출산하고 산후 조리는커녕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 먹어야 하고 집이 없어 밖에서 굶어 죽고 추위에 얼어 죽어야만 하는 이런 삶을 어떻게 나라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의 젖도 배불리 먹어 보지 못하고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채 세상과 하직을 해야만 하고 세 부담이 너무 많아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길가에서 꽃제비가 되어 방랑하고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나라의 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같은 하늘 아래, 하나의 땅 아래에서 사는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곳 대한민국은 천국이고 북한은 지옥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날이 밝았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리조트 호텔 주변을 운동 겸 돌아보았습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인공 폭포도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서 억새밭 길을 걷기도 하고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 곤지암 리조트는 여유롭고 쾌적하고 공기 좋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곳을 알게 됐고 많은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