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고향의 동생한테 온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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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녁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온식구가 과일을 먹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국제전화였는데 북한에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고향 형제들의 소식을 들으며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반가움의 눈물이라기보다 걱정의 눈물이었습니다. 화폐교환으로 많은 돈을 쓸 수 없게 되어 걱정을 하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저는 보지 않아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지난해에 제가 조금 보내준 돈으로 장사 밑천을 마련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동생이 갑자기 단행된 화폐교환 때문에 그 동안 번 돈을 쓸 수 없게 됐다고 걱정하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과거 북한의 화폐교환 상황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1992년에 단행된 화폐교환 때 하루 동안만 시간을 주고 세대 당 400원 밖에 교환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동사무소 창문 앞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김일성의 초상화가 그려진 100원짜리 돈을 손에 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돈을 더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하는 안타까운 제 마음은 누구에게도 표현을 할 수가 없었고, 억울함에 분통만 터뜨려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돈을 더 바꿀 수도 있었지만, 당시 인민반장이었던 저는 소문이 날까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작은 월급을 쪼개어 쓰면서 모아 두었던 2000원을 버려야했던 그 때 억울했던 심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에게 수고비를 조금 지불하고 돈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사를 조금씩 하던 저의 어머님은 나머지 많은 돈을 땅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을 통해 일부를 은행에 저금을 했는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그 돈을 찾지 못했습니다.

중국 화교들 중에는 북한 당국에 대한 반항심을 보이기 위해 돈을 대동강 물에 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땅속에 묻어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난 시절 하루아침에 화폐교환이 있다고 발표해서 주민들을 골탕 먹이던 북한 당국의 행태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갑자기 진행된 화폐교환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자살을 한 사람도 있고, 장마당 기둥에 머리를 박고 화를 토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교환을 하고 남는 화폐는 저금소에 저금하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가 노골적으로 인민들의 돈을 약탈하려고 하는 수법인데 그 돈을 돌려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년에 북한 식량 사정은 지난 1999년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나마 배급소에서 공급되는 식량값마저 국정 가격이 없어지고 화폐교환 이후에 장마당의 물건 값은 한층 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은 불안정한 물가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향 소식은 어쩌면 이렇게 해가 갈수록 더 나쁜 소식만 전해지는지, 이런 고향의 근황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쯤이나 살기가 좋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질까요?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