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곳 한국에 온지도 벌서 10년이 훨씬 지났네요. 남한 생활 첫 시작과 함께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을 논하는 현실 앞에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북한 사회에서 반생을 살아온 저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함부로 김부자에 대한 약력과 이력에 대해서 잘못 표현을 해도 즉시 정치범수용소나 공개총살을 당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로서는 상상도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요즘 두 번째로 대통령 탄핵을 위해 모이는 국민들의 시위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난 주말엔 벌써 6차 시위가 진행 되었습니다. 청소년들과 중학교 학생들 심지어는 어린이들까지 부모님의 목마에 태워 시위에 참가하는 현실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국민들이 찍어준 대통령이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지 못하고 뭔가 잘못하면 국민들이 자유롭게 욕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대통령에게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당당한 모습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이런 모습에 대해 상상도 해보지 못하고 북한 사회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괜스레 '나라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과, 시민들이 청와대까지 밀고 들어가면 혹시라도 '북한군이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세뇌 교육의 후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없고 언론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갑자기 식량 공급이 중단되고 내 남편이 굶어 죽고 내 부모가 혹은 내 자녀와 형제들이 굶어 죽고, 다 죽어가는 자식을 품에 안고 나오지 않는 빈 젖을 물리고 밤새 울면서도 정부에 하소연 한마디 할 수 없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현실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식량이 없어 능쟁이풀을 먹여 다 죽어가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시간이 흐를수록 온 몸이 퉁퉁 부어 오르는 아들을 보면서도 능력 있는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탓으로만 생각했지 당조직이나 정부를 찾아가 식량 공급을 해달라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거든요. 아내와 딸들이 행방불명 되었다고 남편은 감옥으로 끌려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12살 철없는 어린 아들은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추운 칼바람이 쌩쌩부는 겨울에 집을 빼앗겼습니다. 이런 아픔의 상처는 결국 내 가족만이 아니라 지금도 북한 주민들의 현실이 되고 있으며 말 한마디 잘못으로, 사소한 행동하나 잘못한 탓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채 정치범수용소나 감옥으로 가거나 심지어는 공개 총살당하는 등 인권이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유린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85년부터 광범하게 진행 되어온 수많은 공개총살을 보며 살아온 저로서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농장 밭에서 옥수수 2이삭을 훔쳐 먹었다고 공개총살 되었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농장 소를 잡아먹었다고 공개총살 되었고, 가족의 배고픔으로 인해 선물 받은 텔레비전을 옥수수와 바꾸어 먹었다고 많은 주민들을 모아 놓은 가운데 공개총살을 당했습니다. 단고기국 식당 책임자가 중앙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먹였다고 수많은 평양 시민들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총살을 당했습니다. 자기 친어머니가 또는 아내가 공개총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응당히 죽을죄를 지었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북한주민들의 현실이거든요. 부부도 돌아 누우면 남이 된다는 북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신고해야 하는 북한, 부모 친척도 바로 이웃집 간에도 서로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북한.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촛불이 꺼지지 않고 평양까지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젠가 내 고향 사람들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인권을 유린당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누리게 될 수 있을지, 그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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