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도 자선냄비의 사랑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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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 아이들은 첫눈을 기다립니다. 첫눈이 오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썰매도 타겠다고 말입니다. 어른들은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한해를 마감하는 각종 송년 모임에 참석하느라 분주합니다. 저 역시 송년회에 참가하라는 전화를 받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또 이맘때가 되면 출퇴근길 지하철 역사 안이나 시내 곳곳에서는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성금을 기다리는 구세군 자선냄비를 볼 수 있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본부는 전국 350여 곳에서 55억 원, 미화로 55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던 어린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빨간 자선냄비에 모인 대한민국 국민의 따뜻한 정성은 이재민과 난치병 환자, 소년, 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과 복지시설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입니다.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는 아주 오랜 역사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군대라는 뜻의 구세군은 1865년 영국에서 창립돼 현재 전 세계 124개국에서 인종과 종교, 피부색, 지역을 초월하여 나눔 활동을 하고 있는 국제단체입니다.

특히 1908년 영국인 로버트 호가드라는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와 구세군을 만들었는데요. 1928년에는 가뭄과 홍수로 인해 이재민들이 발생 되어 오갈 데 없게 되자 구세군은 한국 최초로 20개소에 구호 자금 마련을 위한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무료급식소를 차려 매일 걸인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제공해 주었다고 합니다.

90여 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구세군은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구세군 사관학교에서 '노숙인 다시 일어서기 센터'를 세워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의 자활의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이곳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동네별로 주민을 대표하는 사람인 통장이 집집마다 쌀을 조금씩 걷자는 말에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서 받는 사랑이 응당하다고만 생각했던 저는 누구한테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해 잘 몰랐고,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당시 한줌씩 걷은 쌀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인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돕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을 보며 아직도 가끔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부분들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만 세월이 세월인 것만큼 저도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베풀기도 하고 사랑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저는 손녀와 함께 평택 전철역을 지나게 됐습니다. 워낙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은 손녀는 전철역 안에서 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손녀와 함께 조금 쑥스럽기는 했지만 빨간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었습니다. 나 자신보다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누는 이 작은 사랑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삶의 용기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깐, 저는 전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내 고향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환경이 떠올랐습니다. 이 추위에 땔감도 넉넉지 않고,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은 북한의 주민들은 올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날 이미 경험을 해보았지만 배가 고프면 더 추운 법인데...이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북한에도 구세군의 빨간 냄비의 사랑이 가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