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고향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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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저는 지난 주말 겨울김장을 했습니다. 굳이 겨울김장을 하지 않아도 먹을 반찬거리가 많은 이곳 한국에는 사시장철 김장김치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올 겨울은 김장을 하지 않고 때때로 맛있는 김치를 구입해 먹으려 했거든요. 그런데 사부인한테서 직접 심고 가꾼 무와 배추, 그리고 갓을 준비했으니 가져가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달음으로 달려갔습니다. 배추 15통과 두 마대의 무, 그리고 갓을 승용차에 한가득 싣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갖가지 양념과 조미료를 구입했습니다. 김장을 하려면 우선 좋은 소금을 구입해야 하지요. 천일염을 구입해 집에 오는 즉시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였습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에 들어가는 젓갈과 고추를 구입하기 위해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젓갈 가게 앞에서 조금 망설였습니다. 새우젓하면 다 같은 줄로 알았는데 5젓, 6젓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일반 새우젓과 5젓 그리고 6젓이 무엇이 다른가하고 차이점을 물었습니다. 사장님은 친절하면서도 조용히 5젓보다 6젓이 더 달고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배추 15통에 맞춤한 량만큼 6젓과 생물 낙지를 구입하고 고춧가루 역시 햇것으로 그리고 수입이 아니라 국산으로 구입해 선 자리에서 가루를 빻아 가지고 왔습니다. 열심히 무를 썰어 갖가지 구입한 재료를 섞어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든 양념이지만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 김치를 버무려 김치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올해는 여느 때와 다르게 물김치도 담갔고 알타리 김치도 버무려 넣었습니다. 이곳 한국 사람들은 겨울 김치 양념에 찹쌀가루로 풀을 만들어 넣는다고 하지만 저는 북한식으로 찹쌀 풀을 넣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김치 맛을 보더니 여태 먹어 보지 못한 새로운 평양 맛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또 평양김치를 먹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치통에 차곡차곡 채워 김치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해마다 김장을 조금씩은 했었지만 이렇게 맛있다고 칭찬을 해 주면서 먹어 주는 사람이 없어 쓸쓸했는데, 올해는 평양김치를 먹게 해주어 행복하다는 남편의 얘기, 또 고향을 불러 주는 분이 있어 저 역시 행복했지만도 순간 마음이 조금은 울컥했습니다.

겨울 김치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죠. 보쌈입니다. 이미 맛있게 잘 익은 고기를 빨간 양념에 무친 꼬게기에 싸서 크게 한 입 넣었습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 그대로 별맛이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추억과 함께 즐거울 때나 기쁠 때마다 또 슬플 때나 마음이 짠할 때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다름 아닌 지나간 고향에서의 추억입니다.

내 고향 평양에서는 11월 중순이 김장철입니다. 어느 해인가는 김장이 너무 늦어져 눈이 펑펑 쏟아지는 12월 중순에 김장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손발이 시려 발을 동동 구르며 장작불을 붙여 놓고 한 톤 넘는 김치를 하고 있는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준다고 설치던 제가 그만 넘어지면서 700kg들어가는 큰 독을 깨버렸습니다.

함박눈이 쏟아지고 강한 칼바람이 부는 그 날에 독이 깨지는 바람에 장작불에 골탄을 녹여 도람통에 바르고 김치를 담갔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겨울김장은 겨울 식량이나 다름이 없습니다만 그해 겨울 김장은 완전히 망쳐버린 셈입니다. 겨울 내내 어머님은 김치를 먹을 때마다 아쉬워했습니다.

어느새 성인이 되고 세 아이 엄마가 되어 첫 겨울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체격보다도 세배나 큰 독에 양념을 바른 김장 배추를 차곡차곡 넣으려다가 그만 큰 독안에 제가 빨간 김장 배추와 함께 거꾸로 쏟아져 들어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쑥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고향에서는 집 마당에다가 땅을 파고 김치 독을 묻고는 김치 창고를 자그마하게 만들고 자물쇠로 잠급니다. 그나마도 무사하면 한 해 겨울 먹을 수 있지만 도둑을 맞으면 겨울 내내 먹을 게 없어지거든요. 자고 일어나 보니 김치가 없어졌다고 아우성을 치며 안타까워하던 동네 주민들의 모습이 훤합니다. 알고 보면 김치 도적이 군인들이라 더 마음이 아팠거든요.

해마다 그러했듯이 올 김장을 하면서도 배추와 무뿐만 아니라 고춧가루와 젓갈을 비롯한 김장감을 모두 구입해 한 열차에 실어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주민들에게 보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비록 부족한 게 많았지만 고향사람들과 서로서로 돌아가며 김장을 담그던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김장을 한 끝에 김이 몰몰 나는 삶은 고구마를 나누어 먹으며 행복해 하던 동네 주민들, 빨간 양념에 밥을 비벼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나누어 먹으며 너스레를 떨던 동갑친구들, 꼭 이맘때가 되면 그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올 겨울 김장은 어떻게 했는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항상 소금이 부족해 우리 집 배추 절였던 소금물을 가져가던 명순이 엄마도, 항상 이 반장 엄마가 한 양념이 맛있다고 복스럽게 먹어 주던 경철이 엄마도, 그리고 제일 먼저 찾아와 꽁꽁 언 손을 입김으로 불어 가며 절인 배추를 깨끗이 씻어 주던 민국이 할머니, 정말 보고 싶은 얼굴들입니다.

그들과 다시 만나 며칠 밤낮을 김치를 담가도 싫지가 않을 듯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