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에 대한 불편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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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참으로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매우 긴장해야 했던 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김정은이 자기 고모부인 장성택을 반당 반혁명적 종파 행위라는 구실로 역적으로 몰아 숙청하고 사형 집행했다는 뉴스는 이곳 대한민국 언론과 국민들, 그리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에게 진행해 오던 사형이 아니라 장성택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90발을 쏘는 기관총 사형을 집행했다는 얘기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고 아니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한 살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큰 범죄를 지었다 해도 기관총 사형을 했다는 사실은 지난 북한에서 반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공개 총살과 교수형을 보아온 저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작은 체구를 향해 기관총탄 수십 발을 쏠 수가 있습니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게 됐고 북한주민들의 인권법이 하루빨리 통과되어 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처음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장성택이 숙청되었다는 뉴스를 들을 때 비로소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면 지난 기간 북한의 친척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보다 장성택이 정권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주민들이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북한당국은 김일성 때부터 이로울 때에는 써먹고 필요 없으면 엄중한 구실과 조건을 만들어 가차 없이 공개 총살을 하거나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관리소로 보내는 것이 수법이었습니다. 더구나 북한정권을 틀어쥔 김정일 역시 지난날 자기 매형은 둘째 치고 하나밖에 없는 친누이인 김경희도 믿지 않았고 나라의 모든 사업을 혼자 결정하고 집행했습니다.

지난날 김정일은 1974년 중앙당조직비서로 오른 뒤 당의 곁가지를 없앤다는 이유를 만들어 이복동생들의 직무를 모두 해제시켜 해외로 보냈었고 새어머니인 김성애를 평성 별장으로 추방시키고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에도 이복동생들은 장례식에 참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김 씨 가족에서 태어나 아버지 김정일을 보고 자란 김정은 역시 일부 주민들이 장성택을 따르고 2인자로 불리는 걸 그냥 둘 수 없었을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장성택의 주변에 있던 주요 인물들을 역적 무리로 몰아 한 몽둥이를 쳤을 것입니다.

이번 장성택 사형집행에서도 드러났지만 북한 주민들은 인권이 뭔지조차 모릅니다. 인권이란 사회적으로 나를 보호받을 수 있고 또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저는 인권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북한 주민들은 그런 법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오히려 법을 잘 알면 범죄인이라고 하거든요. 북한 주민들은 울타리 없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고 우리 탈북자들이 외치고 있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여전히 김 씨 일가가 법이고 그들의 말에 따라 모든 게 처리되고 집행됩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은 김 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의 척도로 판결되고 공개총살당하며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도 자기 대변을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북한주민들이 배고픔에 시달리다 못해 두만강 물에 뛰어들었다는 죄 아닌 죄로, 남의 밭에서 옥수수 한 이삭을 훔쳐 먹었다는 죄 아닌 죄로, 또 배고픔으로 인해 소를 잡아먹었다는 죄로, 김 씨 가족의 사진과 초상, 휘장, 정성 작업과 출판물을 잘 관리하지 않았다는 죄 아닌 죄를 몰아 역적이라며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거나 혹은 공개 총살, 교수형을 당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현실입니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싸움이 자주 일어나듯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불똥이 튈지 모릅니다. 장성택이 기관총 사형 집행과 그 측근들을 역적무리로 몰아 숙청했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장성택 처형은 대한민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가슴에서 결코 잊히지 않는 잔혹한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