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김치냉장고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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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난 저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하며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고 귀를 기울여 보았더니 글쎄 거실 창문 쪽에 있는 공간인 베란다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추운 겨울이라 찬바람을 막기 하기 위해 빈틈없이 닫아 버린 거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이상한 소리의 범인은 김치 냉장고였습니다.

'점검'이라는 빨간 불이 반짝 반짝 켜짐과 동시에 마치 몸에 이상이라도 생겼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김치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자 제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저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고 급한 마음에 큰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야단났다고 했습니다. 딸은 당황해 하는 저에게 홀로 있는 엄마에게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물었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김치의 숙성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 김치전용 냉장고에서 점검이라는 빨간 불과 연이어 번쩍거리고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딸에게 말하면서 손전화기로 사진도 찍어 보내고 손전화기에 김치 냉장고 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조용히 웃으면서 김치 냉장고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하면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고 김치 냉장고에 적혀 있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쪽에서는 요즘 김장철이라 고객 지원 센터 업무가 바쁘다면서 다음날에 저의 집으로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음 날에 지방 출장이 있어서 조금 늦은 시간에라도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사정을 들은 상대방은 다시 상세히 알아보고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몇 분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라도 괜찮은지 물어 저는 괜찮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아침 일찍 소동을 피던 저는 조금 안정이 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식구가 별로 없는 저로서는 해마다 겨울 김치는 배추 10통 밖에 담그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곳 대한민국에는 김치뿐만이 아니라 반찬이 많아 먹을거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에는 욕심이 생겨 김장을 많이 했습니다. 230리터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울 정도로 김장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많은 김치를 넣어 시어지지나 않을까, 아니면 전기 제품이라 화재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됐습니다. 저녁 퇴근시간이 되어 집에 오니 아침 그대로 김치 냉장고는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아기의 몸에 병이 생겨 빨리 봐달라고 하루 종일 울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김치 냉장고가 불쌍해 마음이 아프기까지 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때마침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김치냉장고 고객지원센터 수리공이 금세 도착했습니다.

공구함을 들고 들어선 수리공은 한참을 김치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가스가 모두 나갔다고 했습니다. 바로 가스를 공급해 주니 김치 냉장고는 언제 그랬나 싶게 멀쩡해졌습니다.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맹장이 걸려 금시 죽을 듯이 아프다고 호소를 하다가 수술을 마치면 편안히 잠을 자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자 점검 내역서를 작성하던 수리공은 웃으면서 말투가 조금 다르다고 하면서 제 고향을 물었습니다.

고향은 평양이며 저는 탈북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탈북자를 처음 본다면서 언제 이곳 한국에 왔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8년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수리비로 한국 돈 5만 원, 43달러를 받으면서 이 돈이면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가족이 외식을 한 번 할 수 있는 돈이지만 북한에서는 큰돈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돈 5만 원이 북한에서 아주 큰돈이 될 수 있는 남과 북의 현실에 대해 수리공과 잠깐 이야기했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제가 하루 일을 하면 보통 5만 원을 받게 되는데 그 돈이면 시장에서 쌀 20kg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정도면 저희 식구 5명이 3개월을 먹을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남편 월급과 제 월급을 다 합쳐야 시장에서 쌀 1kg을 겨우 구입할 수 있었는데 쌀 1kg으로 밥을 하면 우리 식구 5명이 한 끼조차 먹기 힘들었다고 수리공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쌀 1kg으로 밥하면 많은 양인데 왜 하루를 먹을 수 없느냐고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우선 고기 기름을 비롯한 부식물 채소가 많고 각종 과일과 우유를 비롯한 사탕, 과자, 빵 등 먹을거리가 많아 시도 때도 없이 먹을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1년 열두 달, 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고 기름도 마찬가지로 구경하기가 매우 어려울뿐더러 채소조차 공급을 해 주어야 먹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또 북한에서는 정말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에 작은 두부를 공급해 주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평양 사람들은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이면 손바닥만한 두부를 4분의 1로 쪼개어 공급하며 콩나물도 세대 당 식구에 관계없이 무조건 1kg을 공급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또 남방 과일 귤 한 알 아니면 바나나 한 개씩 공급해 주는데 그나마도 지방 사람들은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우리 탈북자들이 맨 처음 이곳 한국에 와서 귤과 바나나를 껍질 채로 먹어 한국 사람들을 웃겼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비록 웃을 일이지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냐고 덧붙였습니다.

그분은 비록 잠시 잠깐 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너무도 북한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쌀이 남아돌아가고, 올해 가을에도 농민들이 배추 값이 떨어졌다고 막 갈아 버렸다고 하는데 겨울 김장도 넉넉하게 하지 못했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줬으면 좋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을 마친 그분은 저에게 건강하게 열심히 살라고 부탁했습니다. 참 젊은 사람이었지만 너무도 친절하고 인사성도 밝고 봉사성도 높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봉사 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 됐고 비록 김치 냉장고가 전자 제품이지만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신기한 제품이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