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들과 썰매장에서 보낸 하루

세종시 호수공원 부근 눈 쌓인 언덕길에서 시민들이 썰매를 즐기는 모습.
세종시 호수공원 부근 눈 쌓인 언덕길에서 시민들이 썰매를 즐기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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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평택 애경백화점으로 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손자가 학교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고 합니다. 학교 표창장도 탔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번 성탄절 선물을 해 주고 싶어서 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 문을 열고 내리자 손자들은 어디론가 막 달려갔습니다. 여섯 살짜리 손녀애가 급한 목소리로 빨리 오라고 이 할미를 부르네요. 벙벙해 서 있던 저는 영문도 모르고 손자들의 뒤를 따라 달려갔습니다. 애들이 멈춰 선 곳은 붉은 세 다리 냄비걸이와 빨간 냄비의 모금통이 있는 곳이네요.

손자 녀석들이 이 할미를 부른 것에는 저희들만의 목적이 따로 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면서 용돈을 달라고 합니다. 가방에서 지갑을 열어 3만원을 꺼내 한 장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작은 고사리 손으로 빨간 냄비에 넣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강아지들은 그냥 이 할미 앞에서 응석만을 부리는 철없는 개구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 할미를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미처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게 해준 강아지들이 너무도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한 청년이 손자 녀석들에게 엄지손을 내 보이기도 합니다. 애경백화점에 들어간 저는 매번 이 할미에게 감동을 준 손자 녀석들을 위해 또 한 번 지갑을 열었습니다.

여느 때 없이 눈도 많이 내리는 올 겨울 춥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의미에서 저는 제일 예쁘고 멋있는 두툼한 겨울 잠바와 장갑을 구입해 성탄 선물로 주었습니다. 작은 손녀는 제일 갖고 싶었던 자기만의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우리 외할머니 최고!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옷을 입혀 주던 가게 주인도 크게 웃으시면서 최고라고 엄지손을 내밀어 주네요. 이 할미를 때로는 친구처럼 대해주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내 강아지들, 비록 두툼한 지갑은 비었지만 아낌없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옛날 머슴 집에서 아기의 재롱과 함께 울려 나오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부러워 부자는 금과 돈을 산더미처럼 앞에 놓고 부부가 아무리 웃으려고 애써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속담이 있거든요. 속담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고 보네요. 손자들이 있기에 오늘의 내 행복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자주 해 봅니다.

점심 메뉴 역시 손자들의 입맛에 맞는 스파게티에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눈도 많이 내렸겠다. 썰매장으로 갔습니다. 썰매장에는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북적 거렸습니다. 어른들이 매표소에 줄을 서 있는 동안 애들은 벌써 썰매를 타고 달리듯이 설레고 있네요. 열한 살 짜리 큰 손녀와 아홉 살 손자 녀석은 혼자 썰매를 탔고 여섯 살 손녀 애는 제가 함께 타고 달려 내려갔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애들은 힘이 조금씩 빠져 갑니다. 따끈한 어묵과 라면을 시켜 먹었습니다. 매운 라면을 먹으면서 얼굴이 빨개진 손자들은 신이 나서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다고 하네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 4학년이고 유치원생이지만 그들의 대화는 마치 중학교 학생들 같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대견하고 온 세상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했습니다. 행복하면 행복할 수록 즐거우면 즐거울 수록 새록새록 잊히지 않는 겨울방학이면 썰매를 만들어 줘야 했고 외발 계를 만들어 줘야 했던 지나간 추억이 납니다.

한 번은 오래된 낡은 스케이트 날에 널판지에 못을 박아 썰매를 만들어 주었는데 서로 먼저 타겠다고 애들은 많이 싸우기도 했었거든요. 썰매를 타다가 얼음판에 넘어져 피나는 무릎을 쥐고 울었던 둘째 딸에게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만 약을 발라 주고 붕대를 매 주면서 아픈 마음을 달랬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애들은 세 번만 썰매를 더 타고 가자고 하네요.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하는 엄마의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매운 라면과 어묵에 힘을 입어 씽씽 달리는 손자 녀석들을 미처 따라 갈수가 없네요. 비록 지갑은 텅 비었지만 손자 녀석들과 보내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 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