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는 경남 진주를 다녀왔습니다. 진주는 남부지역의 중심도시로 예로부터 민족문화 정신의 진원지라고 할 만큼 천년고도의 역사를 간직한 충절과 교육문화, 예술의 고장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찜통더위 속에서 햇볕이 가장 강렬한 한낮에 진주 고속터미널에 도착한 저는 마중 나온 분을 찾느라 주변을 살펴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제 이름 석자를 검정색으로 진하게 쓴 종이를 들고 있는 한 남자분이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관광하러 왔을 때 여행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들이 그 외국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높이 들고, 사람을 찾는 것과 흡사한 장면이었습니다. 마치 진주의 관광 가이드가 마중 나온 것 같았고 저는 낯선 곳에서 귀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금 쑥스러웠지만 달려가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저를 마중 나온 분은 진주시청 공무원이었는데 아직 시간이 많다고 하면서 진주 시가지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선 진주 시가지 중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남강 기슭의 진주성을 찾았습니다. 안내원은 본래 토성이던 것을 고려 우왕 5년에 석성으로 다시 지었다고 설명해 줬습니다. 임진왜란 때 진주 목사 김시민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왜군과의 2차 전쟁인 1593년 6월, 7만여 명의 민간인 병사들이 최후까지 항쟁하다 장렬하게 전사했고, 이 때 논개는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것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해 줬습니다.
남강의 큰 바위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인 촉석루도 돌아봤습니다. 고려 고종 28년에 창건해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친 이 누각은 장원루 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고시를 치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6,25 동란으로 소실된 곳은 진주 시민들이 힘을 모아 1960년에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저는 안내자와 함께 차를 타고, 망진산 봉수대를 돌아보았습니다. 봉수대란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도록 설비를 해놓은 곳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외적이 침입하거나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이를 알렸는데 이때 사용되는 연기나 횃불을 봉화라고 불렀습니다. 망진봉수대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뒤 고종 때인 1895년 폐지됐다고 합니다. 그 뒤 진주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 복원돼, 1995년 통일기원 전국 봉화제의 일환으로 망진산 봉화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망진봉수대에서 내려다본 진주 시가지의 전경은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망진봉수대에서 내려와 우리는 남강댐으로 갔습니다. 이 댐은 1970년 완공한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댐으로 길이 975m, 높이 21m 규모입니다. 건설 당시 총 저수용량은 1억8900만 립방미터였지만, 2000년에 총 저수용량 3억920만 톤 규모의 댐 보강공사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남강 하류에 인접한 이 댐은 홍수피해를 없애고, 낙동강 하류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진주시와 사천지구의 상수도용수를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댐이라고 합니다. 진주 남강댐이 건설되면서 형성된 진양호는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저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제 고향 평양에 있는 대동감 댐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에는 시민들이 두껍게 얼은 얼음을 뚫고 구멍을 내서 낚시질도 하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대동강을 건너다니기도 합니다. 경치 좋고 아름다운 대동강에 많은 돈을 들여 댐을 건설해 놓았지만, 해마다 여름 장마철이면 댐 수문을 허술히 관리해 거의 해마다 물이 넘쳐 평양 시내가 물에 잠깁니다. 지난해에도 그러했지만, 올 장마철에도 평양시 주민들은 큰물 피해를 입어 당장 마실 물도 제대로 공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평양시 수재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며, 오래된 댐을 보수하고, 관리도 잘 해서 관광객들까지 모여들고 있는 진주 남강댐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남강에서는 벌써 10월 중순에 진행될 유등축제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은 임진왜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유등축제 기간, 남강에서는 아군과 왜군 복장을 하고 진주성 대첩을 재현하는 행사도 진행된다고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남쪽에서는 이처럼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문화제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을 시기에 열리는 남강 유등축제에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축제도 즐기고 가을도 만끽할 것을 생각하니 공연히 제 마음이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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