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는 이제 3살 된 손녀와 함께 찜질방에 갔습니다. 찜질방은 굳이 비교하자면 북한의 목욕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목욕탕 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목욕시설만 있는 게 아니라 땀을 낼 수 있는 약 효과를 가진 다양한 재료를 안에 둔 찜질방이 있고, 식당과 식료품 매점도 있어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 요기도 하고, 목욕도 하고, 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족끼리 찜질방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찜질방에서 제 손 바닥만한 손녀의 잔등과 고사리 같은 손과 발을 씻어 주며 저는 새삼 너무 행복했습니다. 땀도 내고 때밀이를 한 다음 손녀가 혹시 감기라도 들까 걱정돼 몸을 말리기 위해 찜질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찜질방에는 어린이 놀이방도 있었습니다. 저 보다 훨씬 큰 아이들과 뛰어 놀고 있는 손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평양에 있을 때 저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문수원과 창관원에 보름에 한 번씩 갔습니다. 집에서 물을 데워 매일 아이들을 씻어 주긴 했지만 부족한 것 같아서 보름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의 때를 밀어주기 위해 그 곳을 찾았습니다.
이미 1980년대 중반이 지나서부터는 집 주변에 있는 목욕탕들은 석탄 사정과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새벽에 한 시간 밖에 영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시간에 잠에서 채 깨지 않아 두 눈을 비벼대는 아이들을 이끌고 목욕탕에 가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세 아이를 데리고 창광원에 가서 줄을 선다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른들도 손발이 시리고 추운데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이들은 춥다고 울어대곤 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림 속에 뜨끈한 찜질방에 들어가 땀을 내고 말끔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올 때의 그 시원한 마음과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언제인가는 한참 씻다가 물이 부족해 때물을 제대로 씻어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매 동마다 목욕탕을 건설해 놓고 주민들의 건강관리와 위생 사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전기 사정과 석탄 사정, 물 사정으로 제대로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인터넷을 통해 북한 온라인 매체들이 건강 상식 코너를 통해 속옷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빨아 입는 것이 좋고 목욕도 한 주일에 한 번씩 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상수도 문제에다 전기 사정, 석탄과 비누가 매우 부족하고 열악한 실정인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요즘 북한 주민들은 비누가 없어 일주일에 한 번씩 옷을 빨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식구 1인당 배급되는 비누는 겨우 100g이어서 우리 5인 가족은 한 달에 비누 500g을 할당받았습니다. 비누 한 장이 보통 400g 이었고, 중국산 수입제는 한 장에 250g이어서 두 장이 공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정이 더 어려워지자 비누 공급이 끊겼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공업용 재물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나마 지방 사람들은 비누를 대체할 방법을 아예 생각도 못합니다.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사서 써야 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울에 위생을 잘 관리하지 못해 북한 주민들 중엔 아직도 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언젠가 찜질방을 찾은 우리 친구들 중에 한 명이 "북한 같았으면 서로 머리에서 이를 뽑아 주며 수다를 떨었을 텐데..." 하는 말을 해서 웃기는 했지만, 이것이 북한 현실입니다.
그 날 저녁은 손녀 시연이와 두 딸, 작은 사위와 함께 갈비구이 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밥을 먹고 있는 딸들에게 "오늘 찜질방에서 손녀 시연이의 잔등을 밀어주다 옛날 너희들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고 말했더니 딸들도 북한에서 목욕탕 갔던 일이 생각난다며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깨끗하게 목욕한 날에 갈비구이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느라 몸에 연기를 뒤집어 쓰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