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파트 단지와 길거리에는 붉은 장미와 진한 녹색의 잎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집까지 거리는 약 300m로 짧은 거리입니다만 활짝 핀 붉은 장미꽃을 바라 보느라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지고 한 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면서 즐거움으로 미소 짓게 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미꽃 한 송이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 한 장의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 그대로 장미꽃 향이 코를 통해 가슴속에 파고들어 오네요. 옆에서 이런 내 모습을 보던 남편은 장미꽃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고 듣기 싫지 않은 아부 겸 칭찬을 했습니다.
때마침 심술을 부리듯 손 전화 벨소리가 요란히 울렸습니다. 이번 부부모임은 우리 밭 정원에서 하기로 합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부부모임은 다섯 부부 10명이 모이거든요. 2개월마다 진행되는 부부모임으로 이 모임에서 모아진 회비로 가까운 제주도 관광도 하고 또 회원가정에서 크고 작은 대사에 함께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 모임이 벌써 15년째 이어 오고 있습니다.
매번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졌기에 어려운 것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밭 정원에서 한다고 하니 저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만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은근히 북한음식 솜씨 한번 발휘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마침 퇴근길이라 곧장 정육점에 들려 생 오리 4마리를 구입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걷고 오리를 깨끗이 손질해 맛있는 양념장을 만들어 재워 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새콤달콤한 오이무침과 봄에 해 놓았던 씀바귀 무침과 가을에 담근 김치를 차에 실었습니다. 일찍 서둘러 농장 정원에 도착했습니다. 한창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 회원들이 수박과 참외 등 갖가지 과일을 들고 모두 도착했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 해온 회원들이라 밭과 정원을 돌아보면서 마치 호텔처럼 꾸며 놓았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러는 새 음식상이 차려 졌습니다.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한 부부 회원님들에게 내가 직접 담가 두었던 가시오갈피술을 한잔씩 권했습니다. 한잔 두잔 하며 그동안의 가정들에서 있었던 좋은 일들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웃고 떠들고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음식이 별맛이라는 칭찬과 동시에 뭐니뭐니 해도 가정생활에는 아내의 자리가 크다면서 평양 여자와 서울 남자가 합쳐 사는 우리 부부가 부럽다고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저는 시원한 수박을 먹음직스럽게 잘라 내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회장 부부가 수박을 썬 솜씨 역시 다르다고 또 한 번 칭찬을 해 줍니다.
저는 우리 부부모임은 다른 부부모임들보다 조금 색다른 모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회장님의 부모님은 평북도가 고향이고 또 다른 부부의 부모님 역시 이북이 고향이거든요. 남편들이 고스톱을 치는 동안 우리 부인들은 경쟁심을 가지고 손자 자랑이 한창입니다. 어느 집 손녀는 이제 6개월이 되었는데 벌써 웃고 울고 하면서 노죽이 한창이라면서 영화배우를 시키면 제법일 듯하다고 하고 또 어느 집 손자는 이제 돌도 안 됐는데 벌써 걸음마를 뗀다고 합니다.
서로서로 손전화기에 찍혀 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여자들은 자식 자랑으로 시작해 손자 자랑 그리고 남편 흉을 보는 것으로 마감을 했습니다. 이번 부부 모임은 음식준비로 인해 조금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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