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러시아에서 온 고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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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저는 재미있는 모임이 있다는 친구, 정순이의 전화를 받고 경기도 화성에 다녀왔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가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저보다 먼저 와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저는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단체 모임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의 모임 장소에서는 항상 첫인사가 하나원 몇 기수인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제일 선배였습니다. 이미 와서 정착한 사람도 있었고 금방 하나원을 나와 아직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곳 한국에 10년 전에 온 사람, 5년 전에 온 사람, 2년 전에 온 사람... 모두 각각이었지만 모두가 러시아에서 함께 생활하다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음식은 내가 이곳에 와서 한 번 맛본 적이 있는 사슴 고기 요리였습니다. 사슴고기도 회로 납죽하게 썰어 배와 깨소금으로 무치기도 했습니다. 사슴 뼈는 푹 끓였습니다. 그야말로 사슴고기로 차려 낸 푸짐한 상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만난 반가움에 또 저들은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움에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외치며 잔을 들어 건배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동안 저는 이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분은 나이가 저와 비슷했는데 고향은 평안남도 순천이라고 했습니다. 평양과 순천은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제가 군 생활을 한 공군 근위 1사가 배치돼 있기에 제가 그 지역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또 그 분 역시 군 생활을 평양에서 했기에 소통이 잘 됐습니다.

그들 속에는 이곳 한국에 와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러시아에서 살았던 10년 동안의 추억을 얘기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서로, 고향은 다르지만 러시아 벌목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자유를 찾아 도망쳐 생활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합니다. 또 그들 중에는 중국에 장사를 갔다가 만난 중국 조선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재미있게 나누는 옛 추억 속에는 저에게 아주 신기하게 느껴진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서로 언성을 높였다고 했습니다. 누구는 사회주의 이론이 좋다고 했고 누구는 자본주의 이론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또 그런 논쟁으로 인해 두 패로 갈라져 자본주의 이론이 좋다고 한 사람들은 한국에 먼저 왔고 사회주의가 좋다고 한 사람들은 조금 늦게 지금에서야 남쪽에 왔다고 합니다.

누가 빠르고 늦었나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이곳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울고 웃으며 하는 이야기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또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이 순천인 사람은 얼굴부위에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러시아에서 어느 회사 소장으로 일 하면서 많은 현금을 관리 했는데 하루는 사람들이 다자는 새벽에 마피아 깡패들이 달려들어 피곤에 곯아떨어진 그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옆집에 살고 있던 친구가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서 머리에 대수술을 받고 살아났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북한 보위원들의 눈을 피해 살아온 이야기도 했습니다. 보위부 스파이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탈북자 26명을 한 번에 잡으려고 스파이에 또 스파이를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한 친구는 그 스파이를 죽도록 패주고 3년 동안이나 숨어 다니다가 친구들의 소개로 이곳 대한민국으로 오게 됐다고 했습니다.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이나 러시아에서 탈북한 사람들이나 모두 마음의 상처는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얘기도 해줬습니다. 중국에 있는 우리 탈북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이 수없는 사람들이 강제 북송돼 공개 총살당하는 사람들도 있고 정치범 수용소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고문과 강제 노동에 시달려 죽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사실들도 얘기해줬습니다.

정말 비극에 비극 같은 이야기들을 하노라니 저는 피맺힌 가슴 아픈 추억들이 한 장 한 장 그림처럼 지나갔습니다. 태어나 자란 고향 마을 그리고 탈북해서 남한에 들어온 길은 달라도 이런 비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